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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에 관한 시 모음> 조금엽의 '유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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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에 관한 시 모음> 조금엽의 '유서' 외


+ 유서

내 생명 남은 날이
한 달뿐이라면

누군들
사랑하지 못할까?
누구에겐들
너그럽지 않을까?
무엇인들
용서하지 못할까?

날마다
유서 쓰는 심정으로 살아간다면…….
(조금엽·방송인 시인, 1960-)


+ 유서를 쓰며

삶의 어느 날
끝자락을 위하여 핏빛 연서를 쓴다
어긋난 인연에 몸서리치다
정작 한 줄도 옮기지 못해
끝내 헝클어 버린,

새벽녘 허름한 골목길에
남겨진 수거물처럼
다시 구겨져 내일을 기다리는
내 지친 삶이여

그러나
누군들 한번쯤은  
죽음을 꿈꾸지 않았으랴
(김림·시인, 1962-)


+ 유서를 쓰던 밤
  
내게도 유서를 쓰던
밤이 있었지.
앞길 창창하던 젊은 시절,
어둠은 궁성같이 거룩하고
고요는 뻘밭처럼
끈끈했었지.

나는 생애의 마지막 밤을
포옹하면서,
달개비꽃 맑은
나의 별을 우러렀었지.

나의 유서는 차라리
아름다운 연서.
세상을 목숨 바쳐
사랑했었네.
온몸이 무너지는 고백이었지.

댓돌 위에 벗어 놓은
이승의 신발 위에
달빛 가득 흐느끼던
나의 첫사랑.
유서를 쓰던 밤의 위태롭던 꿈,
내 평생
가장 추운 밤이었었지.
(이향아·시인, 1938-)


+ 유서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의 사람이 되었지만
명찰 하나를 매달고
함부로 대열을 이탈하지
않았다

거둘 수 있는 것
이미 늦었고
소유가 없으니 버릴 것조차 없어
그저
망각의 보자기로 이 생을
싸야겠지

어차피 삶이란
혼자 위태하게 뒹굴다가
죽음 앞으로 스스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는 것
홀연히 털어 버리고 조건 없이
나를 철수시키자

돌아다보면 후회의 강
그 물결에 실려 아파 흐를 바엔
그 마음
글 자국 하나에 새기고 가자.
(김시탁·시인, 1963-)


+ 유서의 밤
  
어제의 유서는 다시 불태워졌다. 유서를 써보았는가.
세상을 껴안는 유서를 쓰던 밤이 있었다. 그때 불면의
시절 청년의 밤이 있었는데 후우, 날마다의 목숨을
새로이 얻던 그랬었는데,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망설임 없이 유서가 씌어졌다. 구겨져 재로 남을 것이므로
그렇게 망설임이 없었던가. 끝내는 망설이리라.
그리하여 나의 삶은 한 줄, 유서가 되지 못하리라.
(박남준·시인, 1957-)


+ 유서

된서리에 배추 속 차듯이 살면
땅 밑의 알토란 무더기 캐듯 할 거라더니,

개평술 몇 잔에 이 집 저 집
상갓집 개처럼 어슬렁거리다간 죽었다.

평생을 리자만 갑다 말었따!
모진 생만큼이나 쓰라린 유서 한 줄 남기고,

서로 외면하는 그의 집에 삭풍만 들락거리며
문에 붙은 조합의 차압 딱지를 추문해댔다.
(고재종·시인, 1959-)


+ 참 좋은 저녁이야

유서를 쓰기 딱 좋은 저녁이야
밤새워 쓴 유서를 조잘조잘 읽다가
꼬깃꼬깃 구겨서
탱자나무 울타리에 픽 픽 던져버리고
또 하루를 그을리는 굴뚝새처럼
제가 쓴 유서를 이해할 수 없어서
종일 들여다보고 있는 왜가리처럼
길고도 지루한 유서를
담장 위로 높이 걸어놓고 갸웃거리는 기린처럼
평생 유서만 쓰다 죽는 자벌레처럼
백일장에서 아이들이 쓴 유서를 심사하고
참 잘 썼어요, 당장 죽어도 좋겠어요
상을 주고 돌아오는 저녁이야
(김남호·시인, 1961-)


+ O양의 유서

난 1등 같은 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난 인간인데
난 친구를 좋아할 수도 있고
헤어짐에 울 수도 있는 사람인데
모순, 모순, 모순이다
경쟁! 경쟁! 공부 공부
순수한 공부를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닌
멋들어진 사각모를 위해
잘나지도 않은 졸업장이라는 쪽지 하나 타서
고개 들고 다니려고 하는 공부

공부만 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
공부만 한다고 잘난 것도 아니잖아!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해 이 사회에 봉사하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면 그것이 보람있고 행복한 거잖아
꼭 돈 벌고 명예가 많은 것이 행복한 게 아니잖아
나만 그렇게 살면 뭘 해

난 로봇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이 없는 물건도 아니다
밟히다 밟히다, 내 소중한 삶의 인생관이나
가치관까지 밟혀 버릴 땐
난 그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떤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1986년 1월, 어느 중3 여학생)


+ 노무현 전 대통령 유서 전문(全文)

사는 것이 힘들고 감옥 같다.
나름대로 국정을 위해 열정을 다했는데 잘못됐다고 비판받아 정말 괴로웠다.
지금 마치 나를 국정을 잘못 운영한 것처럼 비판하고
지인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부정부패를 한 것처럼 비춰지고
가족, 동료, 지인들까지 감옥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게 하고 있어 외롭고 답답하다.
아들, 딸과 지지자들에게도 정말 미안하다.
퇴임 후 농촌마을에 들어와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데 잘되지 않아 참으로 유감이다.
돈 문제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만 이 부분은 깨끗했다.
나름대로 깨끗한 대통령이라고 자부했는데
나에 대한 평가는 먼 훗날 역사가 밝혀줄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 유서

이제 유서를 쓸 때가 되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가롭고 편하다
자유롭게 무엇이라도 지금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그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오늘 나는 동양생명 조빛나리 님에게
무배당수호천사행복플랜 복리 상품의 보험과 적금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진 내가 죽으면 1억원이 나오는
죽지 않아도 그 돈이 나오는 상품 하나를 들었다

가난하게 불우하게 살아온 나는  
내 아이들에게 가난도 불행도 물려주고 싶지 않았고
최고의 학벌을 가진 훌륭한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 아이에게 30억 정도는 물려주고
모두 박사 학위에 외국을 내 집처럼 드나드는
폭넓고 정신적으로나 모든 면으로 풍요로운 인생
세계적인 인물들로 지구촌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넉넉한 아쉬움 없는 남은 날들이길 바라며
그리하여 자신과 가족뿐만이 아닌
주위 어렵고 선한 힘든 사람들에게 위안과 위로가 될 수 있는
봉사할 수 있는 생일 수 있길 바라 마지않는

그것은 자신의 시간들 속에서
또한 가장 빛날 수 있는 보람되고 죽음에 이르러도
결코 두렵지 않고 후회 없는 삶이 될 것이기도 할 것이기에
결국은 자신을 위한 아름다운 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제부터 남은 30년 나도 내 길을 실천하며 가겠다
너희 삼남매 모두는 하나되어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의논하고 도와 힘을 합하여
최고의 삶 최선의 삶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실천하면서
어느 앞에서도 당당하고 누구 앞에서도 떳떳한 부끄럽지 않은
불쌍한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지 않는
착하고 성실한 모범적인 사람으로
마지막까지 행복하고 아름답게 멋지게 살다 가길

엄마는 언제 어느 순간 떠날지 모를 날을 생각하며
오늘 2008년 1월 15일 오후 1시에 이 유서를 적는다
내가 아빠보다 먼저 떠난다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온
아빠의 남은 날들도 온통 너희들로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들로
이루어지길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부탁하고 싶다
아빠가 원하시는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 재혼을 할 수 있게도 해주면 더욱 좋겠고
아빠가 가고 싶다는 일본 여행도 보내드리고
아빠는 충분히 너희들에게 모든 것을 희생하며 보낸 날들이었기에
더한 보답도 아까울 것이 없으리라 본다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착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
건강하고 오래오래 좋은 일들 많이많이 누리고 즐기고
천천히 살다 오거라

남은 시간 할 수 있다면 죽어도 아빠가 외롭지 않도록
아빠가 원한다면 함께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하여
작고 아담한 300평 정도의 땅을 구입하여 문학관을 짓고
주위는 싱싱한 과실나무들을 심어
누구라도 오며가며 따먹을 수 있는
목련꽃 매화꽃 난초 라일락 동백꽃 피는 뒷동산도 만들어
아빠랑 나란히 잠들고 싶다
내가 다하지 못하고 가게 된다면 죽어 받게되는 1억원으로
땅 300평을 경기도쯤에 구입하여 그렇게 만들어줄 수 있으면
더욱 고맙겠다 ㅡ 소망이 이루어지는 나명욱 시인 문학관 ㅡ
죽어 다시 태어나면 나는 남자로 아빠는 여자로 바꾸어 태어나
나는 아빠의 남편으로 아빠는 나의 아내로 만나 다시 영원히
더 한 번 살고 싶다 마지막 큰 욕심을 부리자면
그때는 지금보다 더욱 아빠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좋은
멋진 남편으로 살리라 그 동안 감사했다 사랑했다 고마웠다
세상은 고단했으나
결국 소망을 만들고 뜻을 세우면 이룬다는 일ㅡ
(나명욱·시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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