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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에 관한 시 모음> 이문조의 '아줌마'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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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에 관한 시 모음> 이문조의 '아줌마' 외


+ 아줌마
  
부모님이 지어주신
소중한 이름도 포기하고
솔이 엄마 402호로 살아간다  
  
날씬한 S라인 몸매도 반납하고
뱃살에 펑퍼짐한 엉덩이를 택했다  
  
입맛도 버리고
남편 아이들 입맛에 맞췄다
    
수줍음 다소곳함은
들풀 같은 강인함으로 바꿨다
  
아줌마는 들꽃처럼 아름답다
아줌마는 한국의 힘이다.
(이문조·시인)


+ 아줌마라는 말은

일단 무겁고 뚱뚱하게 들린다
아무 옷이나 색깔이 잘 어울리고
치마에 밥풀이 묻어 있어도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젊은 여자들은 낯설어 하지만
골목에서 아이들이'아줌마'하고 부르면
낯익은 얼굴이 뒤돌아본다 그런 얼굴들이
매일매일 시장, 식당, 미장원에서 부산히 움직이다가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짓는다

그렇다고 그 얼굴들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
함부로 다루면 요즘에는 집을 팽 나가버린다
나갔다 하면 언제 터질 줄 모르는 폭탄이 된다
유도탄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진 못하겠지만
뭉툭한 모습을 하고도 터지면 엄청남 파괴력을 갖는다
이웃 아저씨도 그걸 드럼통으로 여기고 두드렸다가
집이 완전히 날아가버린 적 있다

우리 집에도 아버지가 고렇게 두드린 적 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한 번도 터지지 않았다
아무리 두들겨도 이 세상까지 모두 흡수해버리는
포용력 큰 불발탄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김영남·시인, 전남 장흥 출생)


 서산 아줌마

고향이 충청도 서산이라는
현주네 문간방에
세들어 사는
서산아줌마.

문간방 담벼락 후미진 곳에
웅크리고 앉아서
두 손 모아 얼굴 묻고
훌쩍훌쩍 거립니다.

딸 셋 낳아서
주정 많은 남편에게
두고두고
구박받는

낮에는
살림 보탤 행상을 하고
밤에는
온 가족 뒤치다꺼리 해야하는

아직은 젊은 나이에
몸단장은 꿈도 못 꾸는
온몸 시커멓게 그을은
서산아줌마.

땅값이 하늘처럼 치솟은
개발된 서산 땅엔
외딸자식 시집보낸
늙으신 홀아버지

도지 무는 집칸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며
마른침 삼켜대던
서산아줌마.

오늘은
또, 어인 일인지
쓰레기통 옆에 숨어서
훌쩍훌쩍 거립니다.
(정세훈·시인, 1955-)


+ 안도 · 하숙집 아줌마

안도 하숙집 아줌마 혼자 사는 아줌마
갯마을의 쓸쓸함을 노래로 달랜다
"촛불처럼 나를 태워 나를 사랑한 사람
남자들은 다 그런 것 …"
따라 부르다
떠나간 남자를 찾듯
잊어버린 가사를 찾는다
(이생진·시인, 1929-)


+ 섬 아줌마
    
우리 나라 남쪽 끝 진도를 거쳐
페리호 뱃전에서 바다를 보며
점점이 섬을 돌아 만난
鳥島 아줌마.

싫은 소리 한번 못하신다는
선비 같은 서방님 모시고
파도 따라 덜덜덜 일을 하면서
집안 일으켰다는 섬 아줌마.

김치 솜씨 기막혀서 돋운 입맛이
통깨를 뒤집어 쓴 농어구이에
밥 한 그릇 모자라서
송어 젓갈 맛보다가 물 한 사발.

하루 밤 나그네도
천금같은 인연이라고
가슴 풀어 다독이는
인정 한 사발.

"다음에 또 옷셔이___."
작별 인사에
천리를 돌아가는 발길이
멈칫거리다 마시는 아쉬움 한 사발.
(목필균·시인)


+ 일어서는 아줌마

새벽을 먼저 열고
오늘도
숨가쁘게 뛰어야하는
반지하
개구쟁이들 엄마
  
큰 녀석은 시골로
작은아이는 언니에게
그래도
동반하여 세상 뜨는
철없는 가장들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거덜난 신랑에게
바랄 것은 더 없지만
너덜너덜 살아만 준다면
이 무정한 세상
결코
두렵지 않고
  
꼼꼼 챙기던 패물들이
몇 끼니로 사라지고
살림이 쓰레기가 되어도
메마른 가슴은
끄덕도 않는데
뒹구는 아이들 장난감에는
억장이 무너진다
  
그러나
파김치 되어 돌아와
혼절하면서도
내일을 기다린다
오늘을
차곡차곡 접어가며
다시는 넘어질 수 없는
내일을
학수고대한다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 아줌마

한 명의 아줌마 안엔 수백 수십 명의 아줌마가 숨어있다
그 수심의 깊이는 아줌마가 아니면 절대 알지 못한다
아줌마는 현재 우리 집 안에도 앉아 있다
아줌마가 생각하는 것은 아줌마들에겐 중요한 것이다
아줌마의 생각을 알려면 아줌마들만의 은어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사회학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들이다

아줌마들은 너무 오래 부엌에만 갇혀 있었다
행복한 식탁에 사슬로 매달려 있는 수저 속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다
그 속에서 개성을 잃었다
마음은 마음이 제집인데
아줌마들의 마음은 가족이란 밀집체 속에 너무 깊이 스며 있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얼굴이
아줌마들에겐 없다

아줌마들 중의 더러는 얼굴을 되찾기 위해
노라처럼 집을 뛰쳐나가지만
남편과 자식들이 뜯어먹은 아줌마들의 얼굴은
이미 제단 위에서조차 사라진 지 오래
어디에도 아줌마들의 얼굴은 없다

아줌마는 지금 우리 집 안에도 앉아 있다
얼굴이 없는 아줌마의 기형적 유전자는 아줌마들만이
알아볼 수 있다
아줌마는 나의 어머니이고
내 딸들이다
아줌마! 하고 부르면 뭔가......
가슴을 조이는 것 같은 슬픔이,
세상에 발가벗겨져 내동댕이쳐진 듯한 서러운 에너지가
울컥, 하고 내 속에서 두 발로 일어선다

아줌마는 내 속에 있다
수백 수십 명의 얼굴 없는 아줌마들처럼 내 속에
(김상미·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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