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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 관한 시 모음> 이해인의 '잠의 집'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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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 관한 시 모음> 이해인의 '잠의 집' 외

+ 잠의 집

나는 때때로
걸어다니는
잠의 집이다

눈을 감으면
언제라도
꿈을 데려올 수 있는
고요한 잠의 노래이다

눕지 않고도
잠을 잘 수 있는
내 몸의 신비를

나는
감사하고 감사하며
잠 속의 하느님을 만난다

잠 속에서
그분을 새롭게 믿고
포근하게 사랑한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밥 나이, 잠 나이

지금까지 나는 내 몸뚱이나 달래며 살아왔다.
배가 고파 보채면 밥 집어넣고
졸립다고 꾸벅이면 잠이나 퍼담으며
오 척 오 푼의 단구, 그 놈이 시키는 대로
안 들으면 이내 어떻게 될까보아
차곡차곡 밥 나이 잠 나이만, 그렇게 쌓아왔다.
(윤석산·시인, 1947-)


+ 잠들기 전 기도
  
하느님
오늘도 하루
잘 살고 죽습니다
내일 아침 잊지 말고
깨워 주십시오.
(나태주·시인, 1945-)


+ 잠들기 전에 하는 기도

나뭇잎에 아침이슬 맺듯
자고 나면 내게도
이마에 맑디맑은
기쁨 서리기를

아직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김상현·시인)


+ 잠을 자야
  
잠을 자야
먼 거리도 좁아지는 거다
잠을 자야
물에 빠진 척척한 운명을
건질 수 있는 거다
잠을 자야
너와 내가 이 세상을
빠져나갈 수 있는 거다
(이생진·시인, 1929-)


+ 잠자는 꽃

꽃이 잠을 잔다는 걸
그것도 나처럼
몸을 아주 작고 동그랗게
오므리고 잔다는 걸
나팔꽃을 보고야 알았답니다

쉿!

조용히 하세요
(김영천·시인, 1948-)


+ 나무들의 겨울잠
  
잠시 숨을 멈추고
죽는 연습을 하는 것이네
새로이 푸르러지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도
또 한 해 만큼의 목숨을 절제하는 것이네
아니, 연습이 아니고
그 몇 달 동안은 실제로 죽은 것이네
성장점을 멈추고
모든 이동로를 차단하였거든
사실은 그렇게 잠시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
숨을 멈추어 나를 죽인 후
내 밖의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죽어야 살아나는
그 겸손으로
보라, 이 찬란한 정지를.
(김영천·시인, 1948-))


+ 새벽잠

눈은 떠 있으면서
종소리도 다 들으면서
일어나기는 싫은 새벽잠
밤새도록 비운 공복이지만
아무것도 먹고 싶지는 않은 새벽잠
둥근 해가 불끈
엉덩이를 치받치는 새벽잠
가장 짧고
평화로운 잠.
(정대구·시인, 1936-)


+ 무릎잠

어머니 설거지를 끝내고
창가에 앉아
돋보기를 끼고 찬찬히
아침 신문을 보실 때
나는 슬며시 어머니 무릎을 베고
잠이 든다
창밖엔
개나리가 피었다
(정호승·시인, 1950-)


+ 늦잠

그대 생각에 흠뻑 취해
늦잠을 잤습니다

깨어보니
그대가 내 앞에서
능소화처럼
웃음꽃 숭어리를
왁자하게
피우고 있었습니다
(반기룡·시인)
*숭어리: 꽃이나 열매 따위가 굵게 모여 달린 덩어리.


+ 늦잠

이슬 먹은 애기메꽃 활짝 핀 아침
홑이불 돌돌 말고 늦잠 자는 나에게
울 엄니 내 등 톡톡 두드리며 말씀했지요
애야 똥구녕에 해 받치겠다
솜결 같은 그 말에도 머뜩 잖아
퍼뜩 일어나기 싫어 이불 속에 숨었지요

나 이제야 그 말뜻 헤아려
늦잠 자는 아들녀석에게 쏘아붓지요
이놈들아 똥구녕에 해 떨어진다
꾸물대는 아이들 보면 화가 나서
냅다 이불 빼앗고 발로 차 일으키지요

나 그때나 지금이나
아직 사람 노릇하기 멀었지요.
(나종영·시인)


+ 잠 안 오는 밤

잠 안 오는 밤에는
잠 안 자는 별을 보며
잠 안 자고 눈망울 초롱초롱한
이슬과 함께
어둠의 등에 기대어
밤새껏 놀았습니다
(서지월·시인, 1956-)


+ 잠들지 못하는 밤

신경에 칼날이 섰다
잠들지 못하고 있다
온갖 생각이 다 모여든다
뼈까지 피곤하다

전기 스위치를 올린다
어둠이 싹 사라진다
방 안이 환하다

내 잠도
내 생각의 불빛이 너무 강해
모두 다 달아난 것 아닐까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봄잠    
  
요즈음
외로움이 잘 안 됩니다
맑은 날도 뽀얀 안개가 서리고
외로움이 안 되는 반동으로
반동분자가 됩니다

외로움의 집 문을 닫아두고
나는 꽃 같은 봄잠을 한 이틀쯤

쓰러진 대로 곤히 자고 싶습니다
그리고,
새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김용택·시인)


+ 쓸쓸한 잠
    
쓸쓸한 가을을 안고
잠이나 자자.
하루 종일 무슨 일엔가 바빴지만
되는 일도 허물어지는 일도 결국은 없었는데…

쓸쓸한 가을을 안고
쓸쓸한 꿈이나 꾸어보자.
(문효치·시인, 1943-)


+ 식물의 잠

푸른점박이꽃무지는 겨울이면
제 몸을 둥글게 말고 땅 속으로 들어간다
푸른점박이 꽃잎으로 제 몸을 말아
닿는 것도
닿지 않는 것도
모두 다 감아 둥글린다
제 살과 살을 붙여 둥글리고
뼈와 뼈를 오그려 둥글리고
생각과 생각을 감아 둥글게 말아놓고
흘러가는 시간도 감아 둥글게 이어 놓는다
그렇게 제 속에 틀어박혀 한겨울을 지낸다

삶의 기온이 내려갈 때마다
나는 푸른점박이꽃무지가 된다
내 마음에 날카롭게 닿는 것이든
닿지 않는 것이든
모두 둥글게 감아안아
세상의 추위를 견뎌낸다
칼바람으로 몰아치는 절망일지라도
둥글게 품어안고 겨울잠을 청해본다
(진태숙·시인)


+ 잠자는 산
    
오늘은 산이 잠자는 아이 같다
푸른 이불에 빨간 베개
내가 헛기침을 하며 지나도 깨지 않는다
누구하고 놀았기에 저렇게 피곤할까
산이 자고 있으니 내가 더 외로워진다
(이생진·시인, 1929-)


+ 순수한 깊은 잠을 위하여

바로 누운 채
머리카락 하나 움직이지 않을
인내를 기르자

눈은 감은 채
어둠이란
밝아지는 소망임을 알아내자

호흡을 멈출 수는 없다
우리의 살갗, 온 구멍마다
물줄기를 이루어
흙과 내통하는 지혜를 기르자

우리의 이상이 아무리 높고
우리의 삶이
바라는 꿈대로 형상화해도
우리는
가슴의 맥을 돌려 드려야 하는
사은의 잠자리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문인귀·시인, 1939-)


+ 오늘 잠은 오늘 잠들자
  
밤은
잘 익은 수박 속같이
깊고 화려하다

되돌아서지 못하는
시간의 벼랑에서
아이야
자정에 쫓기어
내일로 밀려나기 전에
여기서 눈을 감고
뛰어내리자

봄바람에 실려 가는 살구꽃처럼
살구꽃 여위고 선 꽃자리처럼
황홀히 눈을 감고
잠기어 들자

옛날부터 귀 아프게 배워서 알지
성경 구절처럼 너도 배워서 알지 왜.
'오늘 일은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우리도 오늘 잠은 오늘 잠들자

아름다운 눈물의 고요에 젖어
먼 나라를 꿈꾸는
깊은 밤의 정수리에
밀물져 기다리는 내일이 있다

여기서 담판을 짓듯
우리도 오늘 잠은 오늘 잠들자
(이향아·시인, 1938-)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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