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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에 관한 시 모음> 나태주의 '겨울나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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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에 관한 시 모음> 나태주의 '겨울나무' 외


+ 겨울나무
    
빈손으로 하늘의 무게를
받들고 싶다

빈몸으로 하늘의 마음을
배우고 싶다

벗은 다리 벗은 허리로
얼음밭에서 울고 싶다.
(나태주·시인, 1945-)


+ 겨울나무

한여름 들끓어 올랐던
세상과의 불화를 잠재우고
홀가분한 몸뚱이로 봄을 기다리는 그대.
(고영섭·시인)


+ 겨울나무의 설화
  
그렇게
기나긴 계절이 가고
이제 삭풍 부는데
맨몸으로
온 가지 가득히
그리움 피워낸 겨울나무
(권경업·시인, 경북 안동 출생)


+ 겨울나무로 서서

겨울을 견디기 위해
잎들을 떨군다.
여름날 생의 자랑이었던
가지의 꽃들아 잎들아
잠시 안녕
더 크고 무성한 훗날의
축복을 위해
지금은 작별을 해야 할 때
살다보면 삶이란
값진 하나를 위해 열을 바쳐야 할 때가 온다.
분분한 낙엽,
철을 앞세워 오는 서리 앞에서
뼈 울고 살은 떨려 오지만
겨울을 겨울답게 껴안기 위해
잎들아, 사랑의 이름으로
지난 안일과 나태의 너를 떨군다.
(이재무·시인, 1958-)


+ 겨울나무

벌목 당한 나무들이
암각화처럼 드러난 겨울산에 들러
소나무의 나이테를 들여다보면
나이는 위로 먹는 게 아니다 옆으로 먹는다

먼저 길 떠난 것들은 껍질이 되어
기꺼이 눈보라를 맞고
안으로 안으로 어린 생명을 키운다

수직의 관념들이 베어진 자리
저 평화의 얼굴
(송종찬·시인, 전남 고흥 출생)


+ 겨울 나무

겨울 숲에 서면
기도하는 나무를 본다.

잎새의 반짝이는 몸짓도
떠나 보내고
온갖 풀벌레들의 재잘거림도
비워 버리고

떠나간 모든 것들을 위해
외곬로만 우러러 기도하는
어머니 같은 나무를 본다.

어쩌다
별빛 고운 날이면
흔적만 남은 아이들의 눈망울을
별들 속에 헤아리고

이제 모든 것을 주어 버리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어머니 같은 나무를 본다.

이 겨울
혼자서 북풍을 맞고 서서
기도로 지새우는
은혜로 선 겨울 어머니를 본다.
(하청호·시인, 1943-)


+ 겨울나무(3)

촛불로 밝힌
영혼의 불씨 하나
그 불씨로 타기 위해
육신을 벗어 던진다

질긴 허욕에
견고한 욕망
가지째
잘라내기 위해
칼바람으로 찍어낸다

아픔마다
빛으로 돋아나기 위해
한사코 찍어낸 육신

겨울 나무는
깎아낸 아픔으로
영혼을 살찌운다
(류정숙·시인)


+ 겨울나무를 보면

겨울나무를 보면
일생을 정직하게 살아온
한 생애를 마주한 듯 하다.

나이에 대하여
부끄럽지 않고
섭섭해하지 않는
풍모를 본다.

집착을 버리고
욕망을 버리고
간소한 마음은
얼마나 편안할까?

노염타지 않고
미안하지 않게
짐 벗은 모양은
또 얼마나 가뿐할까?

겨울나무를 보면
옹졸하게 욕하고
서둘러 분개한 것이
무안해진다.
(강세화·시인, 1951-)


+ 겨울나무·2

지난 여름,
진실한 그대를 볼 수가 없었다.
겹겹이 치장한 그대 곁에
한 발자국도 다가설 수가 없었다.

관객들은 환호하고
그대는 멀리만 있었다.
환호에 묻힌 그대는
그대 자신도 없이
남처럼 살았다.

하지만 이제
그대는 다시 여기에 있다.
벌거벗어 온전히 그대인 채
살마저도 다 저미어내고

그 뼈 위에 내 사랑을 덮는다.
(윤순찬·시인, 경북 청도 출생)


+ 겨울나무의 시

내게는
최소한의 수분만 남겨놓습니다

흰눈이 내 어깨에 쌓이고 쌓여
당신 없는 어둠 하얗게 견디도록

따스한 위로의 한 말씀 안 주셔도
침묵 속의 기약을 읽을 수 있도록

사랑은 채워지지 않는 술잔처럼
늘 목마르고 무작정 슬픈 일이었지만

겨울이 깊으면 깊을수록
내 것으로 내가 얼어붙지 않기 위하여

넘치는 것도 부족한 것도
뿌리 아래 조용히 흘러보냅니다

이제 내가 당신의 빈 잔을 채워드릴
차례입니다  
(홍수희·시인)


+ 겨울나무

바람이 가지를 당길 때마다
아, 힘껏 아프다
고열에 시달려 오들오들 떠는 것은
  
소곤소곤 왔다가 와르르
가버린 잎새들 때문
툭, 툭 불거진 골 깊은 주름 사이로
누더기 같은 세월
흔적만 걸쳐두고 속살 훤히
비쳐서 울고 있는 것은
  
가슴 동그랗게 긁힌 상처 때문이지
  
그렇다고, 송두리째 뽑혀
나가자빠질 순 없어
푸른 수액을 심장에 뿜어 사방팔방으로
봄을 꽃처럼 퍼 올릴 거야
물관과 체관으로 맑게 거른
나만의 꽃빛 음표들 와락 쏟아지게
(문근영·시인, 대구 출생)


+ 겨울나무

잎새 다 떨구고 앙상해진 저 나무를 보고
누가 헛살았다 말하는가 열매 다 빼앗기고
냉랭한 바람 앞에 서 있는
나무를 보고 누가 잘못 살았다 하는가
저 헐벗은 나무들이 산을 지키고
숲을 이루어내지 않았는가
하찮은 언덕도 산맥의 큰 줄기도
그들이 젊은 날 다 바쳐 지켜오지 않았는가
빈 가지에 새 없는 둥지 하나 매달고 있어도
끝났다 끝났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실패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이웃 산들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걸 보면서도
지킬 자리가 더 많다고 믿으며
물러서지 않고 버텨온 청춘
아프고 눈물겹게 지켜낸 한 시대를 빼놓고
(도종환·시인, 1954-)


+ 겨울나무에게

서리가 내리기 전에
나는 너의 귀를 자르겠다.
사나운 바람을
듣지 못하도록,
눈이 내리기 전에
나는 너의 혀를 자르겠다.
모진 추위를
말하지 못하도록,
이제 나는
모든 것을 차단하겠다.
고통받고 살아가는
들어도 침묵하고 살아가는
추운 세상을
네가 알지 못하도록,
(권달웅·시인, 1944-)


+ 겨울나무

가진 것은 다 내어주고
이제 내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다.

햇살을 가려서
쉬게 할 일도 없고

분신들을 주워서
책갈피를 즐겁게 할 일도 없다.

가진 것은
태어날 때처럼
빈 손.

하지만 눈이 오고
가지에 내려앉을 때까지
나는 두 팔을 벌린다.

가진 것을 다 내어주고
앙상한 팔에
손자 안을 날 기다리는 어머님.
(김희철·시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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