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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관한 시 모음> 나태주의 '결혼' 외

도토리 조회 5,549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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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관한 시 모음> 나태주의 '결혼' 외

+ 결혼

외로운
별 하나가
역시
외로운 별 하나와
만났다.

세상에 빛나는 별
두 개가 생겼다.

언제나 춥고
쓸쓸한 여자,
사내 옆에 서서
오늘은
따뜻해 보인다.
(나태주·시인, 1945-)


+ 이상적인 결혼
  
추억을 많이 갖고 사는 것은
재산을 많이 갖고 사는 것보다
부자라고 한다면

우리의 곳간에는
일생을 펴내고도 남을 보석이 있어요.

젊은 날엔
그 중 빛나는 한 개를 꺼내어
반지를 만들어 끼고

멀미 앓는 척
"아이구 머리에"
가끔 이마를 짚기도 했지만

오늘은
졸아든 탕약에 맹물을 섞어 마시듯
서늘한 오후를 보내고 있어요.

탕약의 맛은 싱겁고
이미 약효도 없는
쓰디쓴 탕약을 마시고 있어요.

천천히
조금씩
마지못해
(문정희·시인, 1947-)


+ 꽃밭에 사는 - 결혼에 부쳐
  
나는
당신의 연분홍 꽃잎을
소롯이 받쳐든 꽃받침입니다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정갈한 숨을 실어 나르는 길목에서
당신의 따뜻한 체온을 지키는
작은 우주입니다
봄밤, 바람이 당신의 입술을 스쳐
달빛에 향기라도 묻으면 그만
가슴이 척 내려앉는
외로움의 보물창고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푸른 나의 꽃받침에서 꿈을 꾸는
아름다운 꽃잎입니다
날마다 예쁜 꽃술을 흔들며
나에게만 이야기하는
하나뿐인 나의 별입니다
소낙비가 고운 얼굴을 후려치고
따가운 햇살로 훼방을 놓아도
언제나 나에게만 의지하고 기대서는
그리움의 피난처입니다
  
보지 않을 것과
듣지 않을 소리를 나눌 줄 알며
침묵과 기다림의 의미를
가슴에 포갤 줄 아는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꽃입니다
봄여름가을 가고 하얀 무서리가 내려도
신비로운 꽃잎을 피우는
순결한 사랑입니다
꽃밭에 사는 우리는
(김승동·시인, 1957-)


+ 결혼에 대하여
    
만남에 대하여 진정으로 기도해온 사람과 결혼하라
봄날 들녘에 나가 쑥과 냉이를 캐어본 추억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된장국을 풀어 쑥국을 끓이고
스스로 기뻐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일주일 동안 야근을 하느라 미처 채 깎지 못한 손톱을 다정스레
깎아 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콧등에 땀을 흘리며 고추장에 보리밥을 맛있게 비벼먹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어미를 그리워하는 어린 강아지의 똥을 더러워하지 않고
치울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 나무를 껴안고 나무가 되는 사람과 결혼하라

나뭇가지들이 밤마다 별들을 향해 뻗어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고단한 별들이 잠시 쉬어가도록 가슴의 단추를 열어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은 전깃불을 끄고 촛불 아래서 한 권의 시집을 읽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책갈피 속에 노란 은행잎 한 장쯤은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밤이 오면 땅의 벌레 소리에 귀기울일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밤이 깊으면 가끔은 사랑해서 미안하다고 속삭일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결혼이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랑도 결혼이 필요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며
결혼도 때로는 외로운 것이다
(정호승·시인, 1950-)


+ 결혼하면 뭐가 좋아요

결혼하면 뭐가 좋아요
누군가 이렇게 물어와 대답했다

이래도 저래도 외롭겠지만  
혼자의 외로움과 쓸쓸함보다는 덜한
조금은 사치스런 외로움을 즐길 수 있고

소유하는 안식  
적은 포만감이지만 여유로 수다할 수 있고  
가정이라는 울타리 있어 가슴속 풍요가 넉넉하며
아내라는 이름 얻어 귀속의 기쁨 누리고

존재의 즐거움
해야 할 그 무엇 있어 만족을 얻으며
지켜야 할 도리 있어 나를 바로 세우고

그리고 아름다움
여자의 여자로써 물려받은 치유 불가능한 유산
그 어미로 하여금 꿈을 키우는 자녀 있어 기쁨 얻으며
반드시 주어야 할 사랑 있기에 소중한 삶 이어가고

그래서 결혼은
해도 괜찮은 꽤 괜찮은 것이라고
(정연옥·시인)


+ 사랑과 결혼의 시

당신 부부 사이에 빈 공간을 두어서,
당신들 사이에서 하늘의 바람이 춤추도록 하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서로 포개어지지는 마라
당신 부부 영혼들의 해변 사이에는
저 움직이는 바다가 있도록 하라.

각각의 잔을 채워라.
그러나 한 개의 잔으로 마시지는 마라.

서로 당신의 빵을 주어라.
그러나 같은 덩어리의 빵을 먹지는 마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라.
그러나 각각 홀로 있어라.

현악기의 줄 같은 음악이 울릴지라도
서로 떨어져 홀로 있듯이

당신 마음을 주어라
그러나 상대방 고유의 세계를 침범하지 마라.

생명의 손길만이 당신의 심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서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붙어 서지는 마라.

사원의 기둥들은 떨어져 있어야 하며,
떡갈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칼릴 지브란·레바논 출생 시인이며 예언자, 1883-1931)


+ 결혼 기념일

노오란 은행잎들이
꽃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형용색색의 단풍들이
들러리가 되어주고

가을꽃들과 억새풀이
하객이 되어주고

가을 하늘에선 구름이
눈 스프레이가 되어주고

안개꽃이 만발한 예식장은
넓은 들판이어라.

12년 전 신부의 모습은
아름다웠는데

거울에 비친
지금의 나는 혈색 없는 얼굴.

퇴근길에 남편이 사 온 꽃 한 다발.
"여보 사랑해."

그 사랑에  
난 눈물을 흘리는구나.
(이향숙·시인)


+ 결혼기념일

으레
이슥히 귀가한 옷에서는
땀이며
그을음 냄새가 났다.

오늘
조금 늦긴 했지만
장미송이 받아들고
어쩔 줄 모르는 아내 때문인지
꽃내가 풍긴다.

한겨울
깔아 놓은 이부자리
베갯잇 새뜻이 입혔구나.

촛불 켜고 마주앉아
기도하는
그대 눈가
하뭇한 진주 열렸네.

퍼도퍼도 마르지 않는
가련한 정
결혼할 때 내렸던 서설이
창가에
소복소복 쌓인다.
(강신갑·시인, 1958-)


+ 결혼 반지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싸늘하게 식어 가는
당신의 이마를 짚어 봅니다
파리한 입술
까칠해진 턱수염에 볼 비벼 대며
당신의 얼굴을 내 눈물로 씻어 내립니다
손을 잡고 매달리고
목을 안고 애원해도
자꾸만 돌아서려는 당신,
당신의 나라는 어디입니까
당신께 드린 결혼 반지를
이제는 내 스스로 뽑아야 할 시간
내일이면 태어날 당신의 자식을 두고
어디로 가시렵니까

지환아
아빠라고 한번 불러 다오
불러 봐 다오.
(강민숙·시인, 1962-)


+ 축결혼이라고 쓴 봉투를 들고 초상집에 갔다  

아내가 내미는 봉투에 <祝結婚>이라고 썼다
아내는 '초상집인데'하고 놀랐다
나는 신나게 시를 쓰는 중이어서
결혼인지 초상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그대로 가지고 가라고 하며 웃었더니
그런 실례가 어디 있느냐고 한다
그도 그렇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축결혼>이 좋았다
망인은 20년 전에 앞서간 남편 곁으로 가니
얼마나 기쁜가
그래서<축결혼>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그대로 상가에 내밀어서
머리를 끄덕일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을 이해해야 시도 이해할 수 있는데
아직 멀었다

아내에게 <부의(賻儀)>라고 어려운 글자로 쓴 봉투를 내주며
당신만이라도 결혼식에 가는 기분으로 갔다오라고 했다
(이생진·시인, 1929-)


+ 나무들의 결혼식

내 한평생 버리고 싶지 않은 소원이 있다면
나무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아 낭랑하게
축시 한번 낭송해보는 일이다
내 한평생 끝끝내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우수가 지난 나무들의 결혼식 날
몰래 보름달로 떠올라
밤새도록 나무들의 첫날밤을 엿보는 일이다
그리하여 내 죽기 전에 다시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은은히 산사의 종소리가 울리는 봄날 새벽
눈이 맑은 큰스님을 모시고
나무들과 결혼 한번 해보는 일이다
(김일출·시인, 1946-)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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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축결혼이라고 쓴 봉투를 들고 초상집에 갔다..
아 정말 공감가네요^^ 
(2010.11.25 16:2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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