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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관한 시 모음> 김윤자의 '신문 -죄없이 포승(捕繩)줄에 묶여가는 너를 보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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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관한 시 모음> 김윤자의 '신문 -죄없이 포승(捕繩)줄에 묶여가는 너를 보며' 외

+ 신문 -죄없이 포승(捕繩)줄에 묶여가는 너를 보며

하루만 살다 가는데도
할 말을 다 하고 가는구나.

하루만 살다 가는데도
온 세계를 다 알고 가는구나.

하루만 살다 가는데도
뭇 사람의 사랑을 다 받고 가는구나.

하루만 살다 가는데도
미련 없이 생(生)을 접고 가는구나.

하루만 살다 가는데도
아무런 원망도 없이 가는구나.
(김윤자·시인)


+ 신문
  
눈을 뜨면
핏발이 서고
혈압이 올라
눈을 감으니
답답하고 숨이 차서
그 또한 못 견디겠으니
낸들 어쩌겠소.
(나태주·시인, 1945-)


+ 어느 신문의 찾고 싶은 분 소식란을 보며
  
돌이키고 또 돌이켜 보아도
나는 너희 힘든 길 위로하는 팝송쯤도
되지 못했다

1교시 후에나 2교시 후에 후다닥
먹어 치우는 도시락만큼도 고맙지 못했다.

언제일까. 너희 그리움이 나의 웃음
되어 파란 들꽃으로 피어 볼 때는
(최상호·시인, 경북 경주 출생)


+ 오래된 신문

쥐오줌
마른 얼룩에
마구 뒤틀린
四肢

군홧발 아닌데도
산산조각
부서져

각모자
검은 안경도
뿌연
먼지로 날고 있다.
(권갑하·시인, 경북 문경 출생)


+ 신문을 사는 마음

신문을 펴 본다.
그 사면에 내 눈을 모을 만한
기사가 없다. 그대로 덮어둔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신문을 산다.

변화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사건이 없어 살아오는
내 생활이 이상하다.

부부 싸움은 변화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애정을 촉구한다고
남들의 말이다.

나도 다투고 싶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신문을 펴놓고
말이 없다.

의사가 낮잠을 잔다.
무의미하다.
그러나 환자가 오면 무서워지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신문에 사건이 실리기를 바란다.
하지만 큰 사건을 보면
나는 그 신문을 찢어 버리고 만다.

나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무미건조한 기사 속에서
또 하나의 기사를 찾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이란
차라리
신문을 사는 것이다.
(황금찬·시인, 1918-)


+ 신문을 집으며

신문은 늘 아버지의 차지였다
우리가 잠들어 있는 사이 누군가
대문의 틈새에 비집고 놓고 간
세상의 일들.

실상 아버지 말고는 누구의 관심거리도 되지 못했다.  
아버지는 늘 저 많은 세상의 일들 속에
서 계시는구나,
우리는 다만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오늘도 현관을 열고 어스름 새벽녘
누군가 던져 놓은 신문을 집는다
무심코, 그저 이 일이 내 몫인 양.  
온갖 세상의 일들, 그러나 덤덤한 표정으로
내 앞에 펼쳐진다

아버지도 이랬을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세상의 일들에 묻혀,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을 뒤적이며.
아, 아 이래셨을 것이다.  
아버지
오늘도 그렇게 세상을 걸어 나가신다.
(윤석산·시인, 1947-)


+ 신문

싱싱한 접이 속 파닥거리는 간지가
꿈결 훔쳐내 콩 콩 콩 계단마다 어둠 조각을 털고
부르릉 새벽이 꽁무니 빼면
이삭처럼 쏟아지는 풍성한 아침
내 갈 길을
소년에게 묻는다.

갓 끄집어낸 비릿한 물고기 거실에 풀어놓고
익지도 않은 생선, 가시 발라먹듯
허기 채우고 나면
시효 지난 이력서 파일처럼 잊히는
소년의 희망을
햇살에게 묻는다.

비닐 끈에 숨통 조여 아직은 살아 숨쉬는
인쇄 비린내 가시지 않은 먹다 버린
내 물음표가
파지 묶음 속을 튀어나와
청양고추처럼 구미 당기지만
소년은 내일도 바다냄새 묻어오는
새벽을 열 것이다.
(최남균·시인, 1967-)


+ 오늘 신문

대학수학능력 평가시험을
대리시험으로 치르는 나라
모바일 부정이 전염병처럼 전국을 휩쓸고
학생도 교사도 문교부도
굿거리장단에 덩실 춤을 추고 있다  

조기유학열풍에
학원 학습지시장 불황 모르고
한 달 수십만 원 영어 유치원이
문전성시라고
대문짝만하게 실린 한 구석

사십대 기러기 아빠
야산에서 목매단 변시체로 누웠고
생활고에 지친 엄마
어린 두 딸 날개옷에 감싸고
고층 아파트에서 훨훨 날아오른다

공짜로 줘도 가져가지 않는
피땀 흘려 기른 배추 운송비도 안돼
커다란 트랙터가 갈아엎는 농심
꿈을 짓밟힌 농부의 얼굴이
멀거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심지향·시인, 1948-)


+ 석간신문

하루해가 줄넘고간 자리 지면이 좁다
지구를 한 손에 넣고 밤을 실어 나르는
석간신문을 보면 세상이 좁다
오대양 육대주를 파헤치는 뉴스
경지 정리된 논밭이 흔들리고
막장사람들이 굴을 파던 귀가 흔들리고
애증의 숨소리는 뛰고 피도 흐른다
희로애락의 혓바닥을 빠는
세계의 움직임
작아지기보다는 한층 높나니
오늘의 석간신문은 정·경문제로
대홍수를 이루며
고난의 파리를 잡는다
큰 눈뜨고 보아라, 이 석연치 않는 세상
가슴은 넓고 마음 약한 석간신문
꺼적같은 문풍지 소리가 깊다.
(홍윤표·시인, 1950-)


+ 신문을 펼쳐 들고
  
체념과 포기로 축 늘어진 어깨
구겨진 신문지를 펼쳐 쥐고
혼자 걷는 소심한 골목길
희미한 기억속 마음의 창을 열면
제 몸마저 남김 없이 태우는
필터 끝 허연 담배연기

길가의 철부지들은
아는 듯 모르는 듯
나는 외로운 대장
날마다 숨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가 함께 슬퍼해 주고 위로해 줄까
언젠가 나라님 선거공약
장밋빛 경제위기 탈출은
뇌출혈로 남아 있고
가진 놈 손아귀엔 돈 놓고 돈 먹기 도박판
인생의 선배들이여!
입만 열면 보릿고개 메뉴 삼아 뇌까리다
더 이상 경제 위기를 뭐라 말할꼬

그대들은 입을 굶었지만
우리들은 일을 굶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허광빈·시인)


+ 오늘 신문엔 뭐가 났던가

요즘에도 그 신문 보시지 자네들
자칭 민족지라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말은 꼭 하고 말겠다는
그걸 아직도 공짜로 보시는가
그러지 말고 떳떳하게 돈주고 사보시게
치사하게 무슨 짓인가
그럴 능력 안되면 끊으시던가

그래 오늘은 뭐가 났던가
사설이고 칼럼이고
경제가 어려워도 이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고
IMF 때도 이러진 않았다고 그러지?
노동자 임금 비싸고 노조파업 벌이는 통에 그렇다지?
노동자들 울면 젖병 물려주고 등 다독여 주는
헛딱개비같은 정부의 노동정책 때문에
외국자본도 견디다 못해 다들 줄행랑을 놓는다지
무슨 대학 경제학 박사며 무슨 기업경제연구소 소장은
대담기사에서 이러다가는 국민소득 이만달러 시대는커녕
곧 결딴나 쪽박차게 생겼다고 겁나는 소리들 하지?
재벌들은 아무 잘못 없고 문제는 오로지 자네들
죽게 일한 대가로 썩은 빵 한 조각
먹다버린 풋사과 한 입에도
그저 감지덕지 만족해하라는 그런 신문에
인터뷰하고 입 헤벌리고 사진 박고 하던
조합의 간부들은 요즘 어쩌고들 계신가
자네들 위해 앞에 나서서 역성이라도 제대로 들어주던가?
우울한 낯빛으로 심각히 고민이라도 하던가

자네들, 그 알량한 공짜맛에 취해서
몹쓸 물 드는 줄도 모르고 지내더니
자네들 죽고사는 얘기가 이젠 남의 얘기로 들리는가
자네들 노동자 맞는가?
노동자 아니라 사람이 아니라
간 쓸개 창새기도 다 빼 던진
빈 껍데기 노예들이지.
(서재남·시인)


+ 조간신문이 커피에 빠진 날

아침이면 습관처럼
세상을 펼쳐 들고
쓰디쓴 마음을 마신다.
한시도 바람 잘 날 없는 세상
또 누군가가 죽어 나가고
한 맺힌 칼끝이 세상을 겨눴다.

이긴 자의 승리의 노래가 있고
마침내 패한 자의 슬픈 탄식은
위조된 이력에 이내 스쳐지나갈 뿐
이미 그리 살아 온 더 많은 날들을
어쩌면 적게 살아 갈 날들 앞에
어찌하란 말이냐.

고개 쳐든 자의 당당함 앞에
왠지 모르게 움츠려드는 어깨를
펴보려고 하지만 스스로 죄인 된 양
쪼그라드는 양심이 먼저 달아나고
독버섯처럼 양산한 부끄러움을 뒤집어쓴 채
독한 커피로 면죄부를 얻으려한다.

오늘도 숱한 군상들의 군내
제 잘난 이야기는 잘 녹아버리는
뜨거운 커피에 타서 쓴 약처럼 마시고
자기를 버려 남을 살리는 이들의
정작 구석진 이야기는 애써
식지 말라고 가슴으로 마셔둔다.

아침마다
커피에 빠지는 조간신문
그 깨알같은 세상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커멓게 우려낸
잉크 물을 마신 듯하여
정화수로 입가심을 해야만 한다니…….
(김철현·시인, 1965-)


+ 조간 신문을 보며

손을 내민다
휘청대는 아침이 손을 내민다
무엇이 빛나던 아침을 질식시키고
세상을 검게 물들이는 것일까
흔들리는 것을 바로잡지 못한 채
언어는 피살되고
눈에 거슬리는 건방진 활자를 길들이기 위해
수순을 밟아가는 TV 심야토론
왜 하필이면
의원까지 꿔주는 의사당
한 쪽이 무너진 지금
이런 일들이 불거지는 것인지

그렇구나
오물항아리에 비단보자기를 씌운들
비단항아리는 아니었구나
포장에 맛들인 사람들은 목에 핏대를 심어
네 탓으로 돌리기만 하면 그뿐
누가 맡아도 우리의 민주(民主)는
단지 피박이나 쓰는
열 끗짜리 화투장 비만도 못한 거였구나
그런 민주(民主) 때문에
초라하게 죽어
풀잎처럼 살아 있는 열사들의 정신마저 얼룩지고
광주 항쟁을 거쳐
힘겹게 일어선 이 땅을
또 사이비가 판을 치는구나

자꾸만 주저앉는 아침
아직
낙엽 언저리에는 지난여름 꿈이 묻어 있을까
사납금도 변변히 채우지 못하는 택시기사처럼
서툰 하루는 시작되고
건방진 활자에서
오늘도 소시민의 가슴은 날이 선다.
(이계설·시인)


+ 조간신문 속에서 나를 보며

닫힌 하늘 열린 사이로
초가을 입김은
서서히 스며오는데

외지고 한적한 뜰 안
어느 구석에선가
시들고 썩어 나뒹구는
호박덩굴처럼

지면 빼곡히 뱉어낸
말의 찌꺼기와
양심 썩어 가는 냄새
글로 포장된 거짓소리가
두 눈과 귀 자극하며
하루 시작을 알린다

초라한 육신
한세상 살다가 끝내는
흙 속에 누워
삭아지고 말 것을

무엇엔가 얽매인
미움과 거짓
증오와 오만함 털어내고

집착에서 벗어난 빈 마음으로 색칠하듯
엷은 우수에 잠겨
가을이나 물들일 일이다  
(김해룡·군인 시인, 1949-)


+ 버려진 조간신문

하루를 스쳐간 거리에서
넋 나간 나그네로 방황하다
삶에 지친 몰골을
시궁창에 쑤셔 박고 허우적거려도
그저
하루살이 마감한 시체일 뿐
흔적조차 의미 없구나

온몸 구석구석 더듬으며
독설로 가득 찬 혓바닥 질
저마다
뒤적이는 목적이 다르면서
하나 되어 목소리를 질러댄다

세상살이에 지쳐
흐느적거리는 동질감 때문일까?
손에 들려 하루를 열어주는
몸뚱이에서 우쭐대던
검은 지렁이는
오늘도 희망 잃은 메시지였었지
(유명숙·시인, 1960-)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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