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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에 관한 시 모음> 임영준의 '낙엽 이야기' 외

도토리 조회 3,68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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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에 관한 시 모음> 임영준의 '낙엽 이야기' 외

+ 낙엽 이야기

대대손손 가난을 벗지 못하는 이들에게
넉넉하게 눈 보시布施라도 하고 가려합니다
한평생 따뜻한 입김 한번 스치지 않고
그럴 듯한 사랑 한번 받지 못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가겠습니다
비록 약간은 버거운 짐이 되겠지만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억척같이 버티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염없이 주절거리고 싶습니다
한정된 궤도軌道를 마구 달리다가 마침내
과적過積에 겨워 찌부러지는 미물들에겐
홀홀히 날아가는 혼령이고 싶습니다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 낙엽

떨어지는 순간은
길어야 십여초
그 다음은 스스로의 일조차 아닌 것을
무엇이 두려워
매달린 채 밤낮 떨었을까

애착을 놓으면서부터 물드는 노을빛 아름다움
마침내 그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죽음에 눈을 맞추는

찬란한

신.
(복효근·시인, 1962-)


+ 낙엽

세월의 패잔병처럼
보도 위에 낙엽이 깔려 뒹굴고 있습니다

나는 낙엽을 밟기가 안쓰러워
조심조심 길을 걷고 있습니다

낙엽은 나를 보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me today you tomorrow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조병화·시인, 1921-2003)


+ 마른 나뭇잎                                            

마른 나뭇잎을 본다.

살아서, 사람이 어떻게
마른 나뭇잎처럼 깨끗할 수 있으랴.
(정현종·시인, 1939-)


+ 낙엽

사람들 발길이 낸
길을 덮는 낙엽이여
의도한 듯이
길들을 지운 낙엽이여
길을 잘 보여주는구나
마침내 네가 길이로구나
(정현종·시인, 1939-)


+ 낙엽

한 장의 지폐보다
한 장의 낙엽이 아까울 때가 있다
그 때가 좋은 때다
그 때가 때묻지 않은 때다
낙엽은 울고 싶어하는 것을
울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은 기억하고 싶어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은 편지에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엽을 간직하는 사람은
사랑을 간직하는 사람
새로운 낙엽을 집을 줄 아는 사람은
기억을 새롭게 갖고 싶은 사람이다  
(이생진·시인, 1929-)


+ 낙엽 - 작은 손·3

비수처럼 눈부신 햇살로 몸 태우고
높은 음계의 푸른 휘파람 쌩쌩 불면서
끝모르게 흔들리던 미혹의
여름 다 가고
옆맥마다 메말라 가슬가슬
바람 소리로 몸 비비며
나무 밑동 언저리에 모여 앉아
짧게 남은 지상의 시간 껴안고 있다
부서지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는 길
거친 손등으로 쓰다듬으며
부서져서 땅 속에 스미는 일이
가장 높이 비상하는 일임을
온몸으로 깨닫는
눈 시리게 맑은 가을날 오후.
(강계순·시인, 1937-)


+ 낙엽

낙엽은 나에게 살아 있는 고마움을 새롭게 해주고,
주어진 시간들을 얼마나 알뜰하게 써야 할지 깨우쳐준다.
낙엽은 나에게 날마다 죽음을 예비하며 살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이승의 큰 가지 끝에서 내가 한 장 낙엽으로 떨어져
누울 날은 언제일까 헤아려 보게 한다.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내 사랑의 나무에서 날마다 조금씩 떨어져나가는
나의 시간들을 좀더 의식하고 살아야겠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낙엽 한 잎

나무에게도 쉬운 일은 아닌가봅니다
낙엽 한 잎 떨어질 때마다
여윈 가지 부르르 전율합니다
때가 되면 버려야 할 무수한 것들
비단 나무에게만 있겠는지요
아직 내 안에 팔랑이며 소란스러운
마음가지 끝 빛 바랜 잎새들이 있습니다
저 오래된 집착과 애증과 연민을 두고
이제는 안녕, 이라고 말해볼까요
물론 나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홍수희·시인)


+ 늦가을 낙엽은 지고

찬비가 세차게 내리더니
늦가을 낙엽은 지고
마지막 남은 잎새마저
다 떨군 나무는
1년 동안 가꾸어온
삶의 무게를 다 벗어던졌구나.

이리 저리
발 밑에 구르는 낙엽은
누군가 이승에 벗어놓고 간
햇살 한 줌
그리움 한 줌
슬픔 한 줌
추억 한 줌
(남낙현·시인, 1956-)


+ 나뭇잎이 모르고 있는 것

몇 개 남은 나뭇잎, 나뭇가지 잡고
떠나지 않으려고 바스락 소리만 낸다
그러나 젖 때려는 어미는 냉혹하다
나뭇가지들 회초리 휘둘러
그 소리마저 툭 잘라버린다
이별은 마음까지도 바싹 말라야
떠날 때를 아는 법이다
그러나 나뭇잎 떠나보낸 나뭇가지는 안다
어미의 나무에 남은 슬픔은
뜨거운 화인(火印)이 되어
해마다 둥근 불도장 하나씩 찍고 사는 것을.
(이용우·시인)


+ 열애

때로 사랑은
흘낏
곁눈질도 하고 싶지.
남몰래 추억도 만들고 싶지.
어찌 그리 평생 붙박이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나.

마주 서 있음
만으로도
그윽이 바라보는 눈길만으로도
저리 마음 들뜨고 온몸 달아올라
절로 열매 맺는
나무여, 나무여, 은행나무여.

늦가을부터 내년 봄 올 때까지
추운 겨울 내내
서로 눈감고 서 있을 동안
보고픈 마음일랑 어찌하느냐고

네 노란 연애편지 같은 잎사귀들만
마구 뿌려대는
아, 지금은 가을이다. 그래, 네 눈물이다.
(이수익·시인, 1942-)


+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 데로 떨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
창밖에 따스한 불빛이 그리운 날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한 잎 낙엽으로 썩어
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라
(정호승·시인, 1950-)


+ 삶과 낙엽

낙엽이 떨어져 땅 위로 뒹굴며 말합니다
삶을 이루었노라고
내가 떠나서 거름이 되어야
푸른 녹색 정원을 이룰 수 있다고

나는 자신에게 묻습니다
내 삶이 다할 때
삶을 이루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 후세에게
나의 삶이 과연 거름이 될 수 있을까

내게 던진 이 물음은
내 삶의 방향을 가르쳐 줍니다
(이채·시인)


+ 낙엽

가을 운동장은
운전 면허 시험장이다.
저 많은 응시자들이 떨어지려 모여 있다.
녀석들,
푸른 수입증지를 덕지덕지 붙여 오더니
오늘은 바람을 탄다.
T코스에서 헤매던 것들이
S코스를 유영하기도 하고
어떤 놈은 완성된 후진을 하며
끝까지 흩날리기도 한다.
몇 놈은 벌써 도로주행 시험이다.
이-뿌-다
한 놈 한 놈 떨어질 때마다
기러기 날아가며 합격 벨을 울린다.
기럭 기럭 기럭 기럭
이 운전 면허 시험장은
잘 떨어지는 것이 합격이다.
참 좋은 가을이다.
(이승진·교사 시인)


+ 이파리 한 잎·1

팔목의 힘이 쏙 빠졌습니다
넌지시 바라만 보던 바람이 갑자기 숨을 몰아쉬자
그만 나뭇가지를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뭇가지도 더 이상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습니다

너울너울 내려오는 길에
나무껍질의 숱한 부스럼과 군데군데 뼈까지 드러낸 뿌리의 욕창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바람이 한번 휙, 하고 불자 내 몸은 자꾸
아래로만 아래로만 곤두박질쳤습니다

나뭇가지와 땅 사이 그 길을 걷기 위해 나는
평생 한군데에서만 매달려 있었습니다
(박정원·시인, 1954-)


+ 낙엽                

낙엽에 발목이 푹푹 빠지는
산길을 걷는다.
한 발자국씩 옮길 때마다
부스럭 부스럭
낙엽이 소리를 내준다.
산새소리도 좋지만
낙엽이 내는 소리가 좋다.
낙엽길이 이어져서 좋다.
낙엽 소리 속에는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 소리
벌 나비들의 날갯짓 소리
무더운 여름날 소나기 소리
도토리가 살찌는 소리
번갯불 번쩍이며 내는 우렛소리
조용조용 흐르는 산골짝 물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
가을을 재촉하는 풀벌레 소리
갖가지 소리들이 들어 있다.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욕심이 가라앉는다.
가슴이 넓어진다.
(최춘해·시인, 1932-)


+ 나무 한 권의 낭독

바람은 침을 발라 나무의 낱장을
한 장 한 장 넘기고 있다
언제쯤 나도 저러한 속독을 배울 수 있을까
한 나무의 배경으로 흔들리는 서녘이
한 권의 감동으로 오래도록 붉다
얼마나 읽고 또 읽었으면
저렇게 너덜너덜 떨어져나갈까
이 발 밑의 낱장은 도대체 몇 페이지였던가
바람은 한 권의 책을 이제
눈감고도 외울 지경이다
또 章들이 우수수, 뜯겨져나간다
숨진 자의 영혼이
자신의 몸을 물끄러미 바라보듯
바람은 제 속으로 떨어지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손바닥으로 받아들고
들여다보고 있다
낱장은 손때 묻은 바람 속을 날다가
끝내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밟힌다
철심같이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인적 드문 언덕에 구부정히 서서
제본된 푸른 페이지를 모두 버리고
언 바람의 입으로 나무 한 권을
겨우내 천천히 낭독할 것이다
(고영민·시인, 1968-)


+ 살아 있어야 할 이유

가슴의 피를 조금씩 식게 하고
차가운 손으로 제 가슴을 문질러
온갖 열망과 푸른 고집들 가라앉히며
단 한순간 타오르다 사라지는 이여
스스로 떠난다는 것이
저리도 눈부시고 환한 일이라고
땅에 뒹굴면서도 말하는 이여
한번은 제 슬픔의 무게에 물들고
붉은 석양에 다시 물들며
저물어가는 그대, 그러나 나는
저물고 싶지를 않습니다
모든 것이 떨어져내리는 시절이라 하지만
푸르죽죽한 빛으로 오그라들면서
이렇게 떨면서라도
내 안의 물기 내어줄 수 없습니다
눅눅한 유월의 독기를 견디며 피어나던
그 여름 때늦은 진달래처럼
(나희덕·시인, 1966-)


+ 낙엽의 위로

눈물 짖고 있나요
그만 눈물을 거두어요
수북히 쌓인 낙엽
바람에 쓸려 어디로 가는지
알려고 하지도 마세요

풍성한 낙엽을 밟고 걸으며
바람이 들려주는 가을노래와
따사로운 가을 햇살 쬐며
넉넉한 만추를 누리세요
우린 아직 끝이 아니어요

그대가 새겨준
아름답고 고운 음악
고운 시 한 자락에
고운 옷 입을 수 있었어요
좀더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해요

영영 사라진다 생각 마세요
아주 사라지는 게
아니어요
다시 볼 수는 없다고
쉽게 망각하지 말아 주세요

예쁜 꽃이 지천으로 피고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날 때
낙엽의 영혼이
함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정말로 거기에 있을 거니까요
(김용환·교사 시인)


+ 낙엽을 밟으며

한철 그리도 푸른빛으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던
무성한 잎새들

한 잎 두 잎 쓸쓸히
낙엽으로 지면서도

알록달록 폭신한 카펫을 깔아
세상을 오가는 이들의 발길 아래
제 마지막 생을 바치네.

인생의 사계(四季) 중
어느 틈에 가을의 문턱을
훌쩍 넘어섰으니

이제 이 목숨도
낙엽 되어 질 날
그리 멀지 않았으리.

지나온 세월이야
더러 회한(悔恨)으로 남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일

내 생의 나머지는
그 무엇을 위해 빛나다가
고분고분 스러져야 하는가.
  
휘익, 한줄기 바람이 불어
몇몇 남은 잎새들 지네
(정연복, 1959-)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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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서 있음
만으로도
그윽이 바라보는 눈길만으로도
저리 마음 들뜨고 온몸 달아올라
절로 열매 맺는
나무여, 나무여, 은행나무여.

늦가을부터 내년 봄 올 때까지
추운 겨울 내내
서로 눈감고 서 있을 동안
보고픈 마음일랑 어찌하느냐고

 제 맘 같네요^^

(2010.11.13 11: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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