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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 관한 시 모음> 심훈의 기차'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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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 관한 시 모음> 심훈의 기차' 외

+ 기차

깊은 밤, 캄캄한 하늘에
길게 우는 저 기적 소리
어디로서 오는 차인지,
그는 몰라도
만나서 웃거나 보내고 울거나
나는 몰라도
간신히 얻은 고운 임의 꿈을
행여 깨우지나 말아라.
(심훈·소설가이며 시인, 1901-1936)


+ 기차역사 주변엔 왜 코스모스가 많은가?
  
유달리 기차역사驛舍 주변에
코스모스가 많은 이유를
한 번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어느 날 곰곰이 생각하니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더라구

떠나가는 사람 환송해 주려고
찾아오는 사람 환영해 주려고
지나치는 사람 인사해 주려고
바라보는 사람 사랑해 주려고
형형색색 제각기 피어나서
마냥 몸을 흔들고 있었던 게야
(오정방·시인)


+ 기차와 민들레

소나기 속으로
기차가 달려가는
철로 밑 민들레
(주근옥·시인, 충남 논산 출생)


+ 기차

역마다 불이 꺼졌다
떠나간 기차를 용서하라
기차도 때로는 침묵이 필요하다
굳이 수색쯤 어디 아니더라도
그 어느 영원한 선로 밖에서
서로 포기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다
(정호승·시인, 1950-)


+ 기차

꼴뚜기젓 장수도 타고 땅 장수도 탔다
곰배팔이도 대머리도 탔다
작업복도 고무신도 하이힐도 탔다
서로 먹고사는 얘기도 하고
아들 며느리에 딸 자랑 사위 자랑도 한다
지루하면 빙 둘러앉아 고스톱을 치기도 한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끝에
눈에 핏발을 세우고 다투기도 하지만
그러다가 차창 밖에 천둥 번개가 치면
이마를 맞대고 함께 걱정을 한다
한 사람이 내리고 또 한 사람이 내리고......
잘 가라 인사하면서도 남은 사람들 가운데
그들 가는 곳 어딘가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냥 그렇게 차에 실려 간다
다들 같은 쪽으로 기차를 타고 간다
(신경림·시인, 1936-)


+ 기차를 타고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본다
늘 지나치던 저 겨울 숲도
훨씬 깊고 그윽하여
양지바른 산허리
낮은 무덤속 주인들 나와
도란도란 햇살 쪼이며 앉아 있고
더러는 마을로 내려와
낯익은 지붕들을 어루만져 주기도 한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보면

살아있는 것만 빛나는 게 아니다

가볍게 떠다니는 영혼들이
햇살 속에서 탁탁
해묵은 근심들을 털어 내고 있다
(고증식·교사 시인, 강원도 횡성 출생)
  

+ 기차

철커덕, 철컥철컥, 기차가 지나가네
초등학교 동창생들 대처로 간 철길 위로
마흔 해 뒤의 기차가 철커덕, 철컥철컥,
철커덕, 철컥철컥, 기차가 지나가네
감꽃이 떨어지는, 주울 이 간 데 없는,
우물도 마른 마을로 철커덕, 철컥철컥,
철커덕, 철컥철컥, 기차가 지나가네
작년에 태어난 아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영양군 청기면으로 철커덕, 철컥철컥,
철커덕, 철컥철컥, 기차가 지나가네
예순 해 해로한 아내 꽃상여에 오르던 날
오늘은 누가 죽었소? 철커덕, 철컥철컥...
(이종문·시인, 1955-)


+ 추억이라는 이름의 기차
  
요즘엔 타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젊은이들에겐 더욱 인기가 없습니다

시트는 때가 절을 대로 절었고
유리창은 군데군데 깨어져
찬바람이 들어옵니다
레일은 빨갛게 녹이 슬었고
침목 사이엔 잡초가 자라
갈대 머리를 흔듭니다
떠나고 싶을 때 돌아옵니다
이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달빛 반 햇빛 반에 어린 마을,
숨바꼭질이 이미 끝났는데도
숨어 있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아직도 변심한 애인을 위하여 울고 있는
한 청년이 있습니다

요즘엔 별로 찾는 사람이 없습니다
젊은이들에겐 더욱 인기가 없습니다.
(나태주·시인, 1945-)


+ 시골 기차를 타고

멀리 지평선 너머로 붉은 노을이 진다.
차창 밖으로 작은 집들이 스쳐 지나가고,
어느 집에는 벌써 저녁 등불이 켜졌다.

잘 있거라 집들아. 마당가에 심어진 나무들아
붉은 칸나야, 길가에 핀 코스모스야
너는 남고 나는 떠난다.
이별은 항상 영원한 양 서럽고
마음은 항상 그곳에 두고 떠난다.

인생은 항상 떠나는 것
영원한 것이란 하나도 없다.
집도 나무도 꽃들도 스치는 바람도
저 높은 초저녁 별들까지 언젠가는 떠난다.

나는 3등 열차 창가에 턱을 고이고 앉아
스치고 지나가는 풍광에 눈을 뗄 줄 모른다.
기차는 무정하게 저녁 들판을 달리고,
나는 혼자 레일 위에 추억을 깔며 달린다.
(엄원용·시인, 충남 서산 출생)


+ 기차놀이

유년의 기억에서 생생한 기차놀이
그 힘찬 기적소리로 달려가면
둥둥 푸른 창공도 함께 흘러갑니다.

숨차게 오르막길을 달리다가
굵은 줄이 팽팽해지면 유연한 힘의 탄력으로
느슨하게 힘을 주어 끊어지지 않던 새끼줄,
그 시절 슬기로운 친구들의 지혜가
오늘, 영광의 길로 환합니다.

해마다 먼 산 뻐꾸기는 봄으로 날아들고
참꽃 붉은 빛깔도 봄으로 피어나는데,
강산은 변함없이 그대로 검게 탄 채
멈칫멈칫 뒷걸음으로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녹슨 바람이 허리를 감고 돌아
지금은 혼자의 기차놀이로 버거운 세상입니다.
훌쩍 커버린 소꿉장난 친구들은 뿔뿔이 헤어져서
달리고 싶어도 혼자여서 달릴 수 없는 기차놀이,

그 단단한 새끼줄을 잡았던 손은 이제 어른입니다.
아직 남은 세월의 오르막길을 거머쥐고
씩씩하게 달리고 싶은 외로운 손입니다.
(박종영·시인)


+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아니, 기적소리가 듣고싶다
가을비에 젖어 다소 처량하게
비극적 음색으로 나를 때리는
그 새벽 기적소리를 듣고싶다
방문을 열면 바로 눈앞에 있던
단풍이 비에 젖은 채로 이마에 달라붙는
시골 역전 싸구려 여인숙에서
낡은 카시밀론 이불 밑에 발을 파묻고
밤새 안주도 없이 깡소주를 마시던
20대의 어느 날 바로 그날 밤
양철 지붕을 쉬지 않고 두들기던 바람
아, 그 바람소리와 빗줄기를 다시 안아보고 싶다
인생에 대하여, 혹은 문학에 대하여
내용조차 불분명하던
거대 담론으로 불을 밝히기라도 할 양이면
다음날의 태양은 얼마나 찬란하게
우리를 축복하던가
그날은 가고 기적을 울리며 낯선 곳을 향해
이미 떠난 기차처럼 청춘은 가고
낯선 플랫폼에 덩그러니 선 나무처럼
빈 들판에 혼자 서서
아아 나는 오늘밤 슬픈 기적소리를 듣고 싶다
(김용락·시인, 1959-)


+ 사랑기차  

너와 나
사랑여행을 떠난다
합승한 승객은
설레임, 기쁨, 두려움들
열차는 너무 빨리 달리고 있다
너무 빨리
어떤 이들은
금세 이별역에서
어떤 이들은 고민역에서
또 어떤 이들은 결혼역에서 내렸다
그러나 나는
아무 역에서도
내리고 싶지 않다
너와 함께라면
영원히 달리고 싶다
(이용채·시인)


+ 너라는 종착역으로 달려야 할 나의 기차는

너라는 종착역으로 달려야 할
나의 기차는,

어느 간이역에 멈추어
써늘한 늦가을 비를 흠뻑 맞으며
떨고 있는 나의 기차는,

붉은 낙엽에 파묻혀가는
레일 위에서 오늘도,
기다림과 그리움의 두 발로
엉거주춤 버티고 서 있을 뿐이다.

어느샌가
바퀴들은 벌겋게 녹슬고
기관마저 고장난 채
육중한 검은 철마는 아무 말 없이,
쿵쿵거리는
내 심장의 박동을 삼키며
제 허기만을 채우고 있다.

하늘 끝까지 닿도록 요란하게
푸른 기적을 울리며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철길을
철그렁거리며 달려야 할
나의 기차는.
(안재동·시인, 경남 함안 출생)


+ 기차를 놓치다  

골판지 깔고 입주한 지 얼마 안 되는
말수 없고 어깨 심히 휜 사내를 향해
눈곱이 다층으로 따개비를 이룬
맛이 살짝 간
나 어린 계집의 수작이 한창 물올랐다
농익은 구애가 사내의 귓불에 가닿자
속없는 물건은 불끈 일어서고

새벽, 영등포역

지하도에 내몰린 딱한 사내와
쫓겨난 비렁뱅이 계집이 눈 맞았는데
기어들어 녹슨 나사 조였다 풀
지상의 쪽방 한 칸 없구나
달뜨고 애태우다
제풀에 지쳐 잠든 사내 품에
갈라지고 엉킨 염색모 파묻은
계집도 따라 잠이 들고

살 한 점 섞지 않고도  
이불이 되어 포개지는
완벽한 체위를 훔쳐보다가
첫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고단한 이마를 짚고 일어서는
희붐한 빛,
저 철없는 아침
(손세실리아·시인, 1963-)


+ 기차를 기다리며

새마을호는 아주 빨리 온다
무궁화호는 빨리 온다
통일호는 늦게 온다
비둘기호는 더 늦게 온다

새마을호 무궁화호는 호화 도시역만 선다
통일호 비둘기호는 없는 사람만 탄다

새마을호는 작은 도시역을 비웃으며
통일호를 앞질러 달린다
무궁화호는 시골역을 비웃으며
비둘기호를 앞질러 달린다

통일쯤이야 연착을 하든지 말든지
평화쯤이야 오든지 말든지
(백무산·노동운동가 시인, 1955-)


+ 기차가 기적을 울리는 이유

처음에는 행복했을 것이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반겨주고
가끔씩 흔들거리는 벼이삭과 눈인사도 나누며
참새들과 허공을 가르며 달리기시합도 했던
그 때까지만 해도 기차는 참으로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기차의 얼굴에 여드름이 몽글몽글 날 즈음,
기차는 자신의 처지가 답답했던 것이다
나는 왜 내 길을 벗어날 수 없을까 ?

새색시 가슴처럼 도톰하게 핀 벚꽃나무를 보면
잠시라도 가던 길을 버리고 꽃망울에 입맞추고 싶고
창가에 달빛 드리운 그런 밤이 오면
철로에서 한 걸음 뛰쳐나와
당장이라도 그대에게 달려가련만
기차는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잠시 스쳐간 이름도 모를 간이역을
기차는 사랑하게 된 것이다.
느끼고 싶어도 만질 수 없고
고백하고 싶어도 이름도 모르는 간이역을,

그래서 울었던 것이다.
내 마음 알아달라고
시작과 끝을 수십 번 오가는 이유도
잠시라도 그대를 볼 수 있기에,

내가 늙어 고철이 되어 한곳에 자리잡고 누워야 한다면
민들레 마당을 갖고 있는 바로 그 간이역임을
알아달라고, 기억해 달라고
기차는 그렇게
기적소리를 내며 목놓아 울었던 것이다.
(김현태·시인, 1972-)


+ 완행열차  

사람들을 빽빽이 싣고
정거장마다 멈추어 서며
쉬엄쉬엄 가는
완행열차에 서린
옛 추억이 그립다

급할 것 하나 없이
창문 밖으로 연달아 스치는
세상의 풍경들을 감상하며
흐르는 시간도 까맣게 잊다 보면
어느새 종착역에 가 닿았지  

그래,
한세상 그렇게 살다가 가자      
인생이라는 열차에 함께 타고 있는
사람들과 정겨운 눈인사도 나누고
호기심에 눈망울을 굴리며  

먼 훗날을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지는
다채로운 세상의 모습들에
이 마음도 출렁이며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자  

저만치 종착역에
불빛 깜빡이는데....
(정연복,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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