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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에 관한 시 모음> 이상국의 '단풍'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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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에 관한 시 모음> 이상국의 '단풍' 외


+ 단풍

나무는 할 말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잎잎이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다

봄에 겨우 만났는데
가을에 헤어져야 하다니

슬픔으로 몸이 뜨거운 것이다

그래서 물감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계곡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이상국·시인, 1946-)


+ 단풍1  

너의 죽음이
국민장이 되는구나
기껏 여름 몇 푼의 그늘
업적은 미비한데
화려한 장례식에
명산은 문상하느라
온 나라가 북새통이다
(박가월·시인)


+ 단풍놀이


빛 고운
다비식에
조문객이
너무 많구나
(김현주·시인, 전북 전주 출생)


+ 너라는 단풍

이제 너의 불붙은 눈 피할 수 없다
감춰야 할 가슴 묻어둘 시간이 지나갔다
그 누가 막는다해도 저문 산이 길을 트고 있다
(김영재·시인, 1948-)


+ 단풍

보고싶은 사람 때문에
먼 산에 단풍
물드는

사랑
(안도현·시인, 1961-)


+ 단풍

개마고원에 단풍 물들면
노고단에서도 함께 물든다
분계선 철조망
녹슬거나 말거나
삼천리 강산에 가을 물든다
(류근삼·시인, 1940-)


+ 단풍

신이 주신
마지막 황금의 가사를 입고
마을 뒤 언덕 위에 호올로 남아 서서
드디어 다한 영광을 노래하는
한 그루 미루나무
(유치환·시인, 1908-1967)


+ 단풍

단풍이 지오
단풍이 지오
핏빛 저 산을 보고 살으렸더니
석양에 불붙는 나뭇잎같이 살으렸더니

단풍이 지오
단풍이 지오

바람에 불려서 떨어지오
흐르는 물 위에 떨어지오
(피천득·수필가, 1910-2007)


+ 단풍  

저리 밝은 것인가
저리 환한 것인가
나무들이 지친 몸을 가리고 있는 저것이
저리 고운 것인가
또 어디서는 짐승이 울고 있는가
어느 짐승이 덫에 치인 생채기를 핥고 있는가
저리 뜨거운 것인가
(신현정·시인, 1948-)


+ 내장산 단풍
  
내일이면 헤어질 사람과
와서 보시오,

내일이면 잊혀질 사람과
함께 보시오,

왼 산이 통째로 살아서
가쁜 숨 몰아 쉬는 모습을.

다 못 타는 이 여자의
슬픔을 ….
(나태주·시인, 1945-)


+ 단풍의 시

세월이란 이름의 능글맞은 시인
피처럼 붉은 사연
노란 슬픔의 사연
쓰다쓰다 구겨진 갈색 사연을
야위어 가는 햇살 아래서
바람과 함께 단풍의 가엾은 몸에다
아픈 문신처럼 엮어 갑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진실로
낙엽은 결코 슬픔이 아니라
정녕 끝이 아니라
(손석철·시인, 1953-)


+ 단풍

그 당당하던
푸르름은 어디에 가고

무안을 당했느냐
꾸중을 들었느냐
얼굴이 빨개져서 보기 좋구나

빨개져도 놓지 마라
손까지 놓으면
땅에 떨어지고

땅에 떨어져 뒹굴면
낙엽 되느니
(박태강·시인, 1941-)


+ 단풍

해마다
색동옷 입고
파도타기를 하는 듯
점점이 다가오는 너에게
어떤 색깔을
선물해야 고맙다고 할까
(반기룡·시인)


+ 단풍의 고해

죄를 사하여 주소서
이 한 몸 불살라
상제 하겠나이다
감히 은총을 거슬러
만고청춘을
구가하려 하였으니
천벌을 받아 마땅하리니
기꺼이 활활 타올라
경건한 제물이 되겠나이다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 단풍 드는 날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도종환·시인, 1954-)


+ 단풍의 이유  

이 가을에 한 번이라도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하다.
내내 가슴이 시퍼런 이는 불행하다.

단풍잎들 일제히
입을 앙다문 채 사색이 되지만
불행하거나 불쌍하지 않다.

단 한 번이라도 타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너는 붉나무로
나는 단풍으로
온몸이 달아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사람도 그와 같아서
무작정 불을 지르고 볼 일이다.

폭설이 내려 온몸이 얼고
얼다가 축축이 젖을 때까지
합장의 뼈마디에 번쩍 혼불이 일 때까지.
(이원규·시인, 1962-)


+ 단풍나무

옷을 벗는 것이다
푸르고 단정하던 껍데기를
벗어 던지는 것이다

여름 날
숨막히게 내리 쪼이던
햇살 앞에서도 당당했고

온 몸에 퍼부어 대던
굵은 물줄기에도
한 점 흐트러짐 없던 푸르름

바위틈에 바람이 일고
흰 눈발 펄펄 하늘로 가는 날에도
담담하게 서있으려니 했는데

훌훌 옷을 벗는 것이다 저렇게
벗어 던지면 더 아름다운 것을
기어이 보여주는 것이다
(김승동·시인, 1957-)


+ 단풍, 혹은 가슴앓이  

가슴앓이를 하는 게야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대낮부터
낮술에 취할 리가 없지

삭이지 못한
가슴속 붉은 반점
석양으로 타오르다 마침내
마침내 노을이 되었구나

활활 타올라라
마지막 한 잎까지
아쉬워 아쉬워 고개 떨구기엔
가을의 눈빛이 너무 뜨겁다
(이민우·시인, 1962-)



+ 단풍

그 여자 단풍드는 여자
어머니
내 속에 서 있는 나무

그 시간 단풍드는 시간
죽음
내 속에 서 있는 나무

그 입술 단풍드는 입술
침묵
내 속에 서 있는 나무

그 몸 단풍드는 몸

내 속에 서 있는 나무

죽을 줄 모르는 죽음으로
살 속의 물과 꿈, 긴 속삭임 다 쏟아내고
내 속에 뼛가루 꽃나무를 꼿꼿하게 세운다
(이사라·시인, 1953-)


+ 단풍을 보면서

내장산이 아니어도 좋아라
설악산이 아니어도 좋아라

야트막한 산이거나 높은 산이거나
무명산이거나 유명산이거나
거기 박힌 대로 버티고 서
제 생긴 대로 붉었다
제 성미대로 익었다

높고 푸른 하늘 아니더라도
낮고 충충한 바위하늘도 떠받치며
서러운 것들
저렇게 한번쯤만 꼭 한번쯤만
제 생긴 대로 타오르면 될 거야
제 성미대로 피어보면 될 거야

어린 잎새도 청년 잎새도
장년 잎새도 노년 잎새도
말년 잎새도
한꺼번에 무르익으면 될 거야
한꺼번에 터지면 될 거야

메아리도 이제 살지 않는 곳이지만
이 산은 내 산이고 니 산인지라
저 산도 내 산이고 니 산인지라
(조태일·시인, 1941-1999)


+ 나무들은 때로 불꽃 입술로 말한다  

사랑하는 시간만 생이 아니다
고뇌하고 분노하는 시간도 끓는 생이다
기다림만이 제 몫인 집들은 서 있고
뜨락에는 주인의 마음만한 꽃들이
뾰루지처럼 붉게 핀다

날아간 새들아, 어서 돌아오너라
이 세상 먼저 살고 간 사람들의 안부는 이따 묻기로 하고
오늘 아침 쌀 씻는 사람의 안부부터 물어야지
햇빛이 우리의 마음을 배춧잎처럼 비출 때
사람들은 푸른 벌레처럼 지붕 아래서 잠깬다

아무리 작게 산 사람의 일생이라도
한 줄로 요약되는 삶은 없다
그걸 아는 물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흘러간다

반딧불 만한 꿈들이 문패 아래서 잠드는
내일이면 이 세상에 주소가 없을 사람들
너무 큰 희망은 슬픔이 된다
못 만난 내일이 등 뒤에서 또 어깨를 툭 친다

생은 결코 수사가 아니다
고통도 번뇌도 힘껏 껴안는 것이 생이다
나무들을 때로 불꽃 입술로 말한다
생은 피우는 만큼 불게 핀다고
(이기철·시인, 1943-)


+ 단풍 숲속을 가며      

무어라 말씀하셨나
돌아서 옆을 보면
화들짝 붉히는 낯익은 얼굴
무어라 말씀하셨나
돌아서 뒤를 보면
또 노오랗게 흘기는 그 고운 눈빛
가을 산 어스름 숲속을 간다
붉게 물든 단풍 속을 호올로 간다
산은 산으로 말을 하고
나무는 나무로 말하는데
소리가 아니면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하루해는
설키만 하다
찬 서리 내려
산은 불현듯 침묵을 걷고
화려하게 천자만홍 터뜨리는데
무어라 말씀하셨나
어느덧 하얗게 센 반백의
귀머거리
아직도 봄 꿈꾸는 반백의
철딱서니
(오세영·시인, 1942-)


+ 열매 도둑 단풍 도둑

며칠만에 돌아와 집안 둘러보니
풀들이 밟혀 작은 길 생겨나 있다
그 새로 난 작은 길 가보니
은행나무 아래서부터
감나무 아래로 가서 멎었다가
대추나무 아래로 가서 멎었다가
뒤란 둔덕까지 가서 멎어 있고
나무마다 가지에 열매 하나 없다
우리 집에는 대문이 없는데도
올해도 누가 집 뒤에 트럭 대놓고 들어와
대추와 감과 은행 싹 털어 싣고 갔다
단풍 들 무렵이면
내가 집 나가는 짓거리 알고 있는
이웃이 와서 한 짓거리 아니라면
해마다 때 잘 맞출 순 없는 법이지만
혐의를 품지 않기로 한다
나도 산천에는 대문에 없다는 걸 알고
함부로 이곳저곳 드나들며
나무들이 잎에 맺은 색깔들 눈독들여 와서
마음에 한 자리 깔았으니 피장파장 아닌가
그 새로 난 작은 길 발자국 맞춰 걸어보니
내 걸음나비와 똑같다
(하종오·시인, 1954-)


+ 청단풍으로 지다

하늘은 파랗게 올라섰는데
구름 한 점 없는데

여린 바람결에
잔 나뭇가지 하나 뚝 꺾인다
가지에 달렸던 나뭇잎도
의미 없이 따라 지고만다

추분이 지나
밤이 길어졌으니
부러진 나뭇가지에
새순 돋기는 틀린 일이다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감 몇 알 붉게 익어가는데
부러진 손 허우적거리며
올리는 기도

어머니의 어머니가
착하게 살라 했는데
어머니가 말없이 살라했는데
그렇게 살다가 이렇게
병든 가슴 무너진 채
병실에서 올리는 기도

딸아,
넌 결코 착하게 살지 마라
너만을 생각하고 당차게 살아라
어미처럼 어미처럼
여린 바람에도 부러지는 나무가
되지 마라
(목필균·교사 시인)
*암 말기 수술을 받고 누워 있는 동료교사를 보고 와서

* 엮은이: 정연복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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