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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에 관한 시모음> 김영천의 '연탄재의 유언' 외

도토리 조회 2,57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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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에 관한 시모음> 김영천의 '연탄재의 유언' 외

+ 연탄재의 유언

내 죽으면 화장을 하거라
뼛속까지 속속들이 잘 태워
몽근 가루로 빻은 다음
달동네
별동네
그 구비 구비 어둡고 미끄러운
골목길에 뿌려다오

가스보일러, 기름보일러
등 따시고 배부른 사람들 자가용 밑에는
염화칼슘 그 마약 같은 흰 가루를
뿌린다 하더라만
아직도 부끄러운 살빛으로 쌓였다가
일상의 피로에 지친 저 어미와
노동의 완력에 다친 저 아비의 발 밑에서
차라리 나는 자진하겠으니
더러는 덩어리째 던져다오

아낌없이




(김영천·시인, 1948-)


+ 어머님 유언

"나 죽으면 영감 옆에 묻어주라"
젊어선 술 도박에 밤새는 줄 모르시고
늙어선 중풍 3년
어이 그리 좋으셔서...
"니들은 몰라"
"니들은 몰라"
꺼이꺼이 통곡하며
아버님 상여 뒤따르시던
어머님
그립습니다.
(이여진·시인, 전남 해남 출생)


+ 유언  

운명이다 화장해라
너무 슬퍼하지 마라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건강이 안 좋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을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하나만 세워 달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노무현·전 대통령, 1946-2009)


+ 그때 유언처럼 말하겠습니다

입안에서 아낀답니다
감사하다는 말
마음속에서 간직한답니다
고맙다는 말

누군가가 묻습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네 속을 어찌 알겠느냐고요
나는 대답합니다
고마움이 태산만 하고
감사함이 하늘만 하니
이를 어찌 짧은 한두 마디 말로써
죄다 나타낼 수 있을까요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태산이 무너져 내린다고 해도
하늘이 산산조각 난다고 해도
나는 말하고 또 말할 것입니다
염불하듯이 기도하듯이

내 마음을 몰라주어도
돌부처처럼 그저 묵묵히 있겠습니다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감사할 줄 모른다고 치부당해도
그냥 웃고 말겠습니다

목욕탕에 나를 데려다 놓고
내 뱃속에 든 것을
손으로 뽑아내며
머리에서 발끝까지
말끔하게 씻겨주는
내 가까운 그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 쉽게 못합니다
감사하다는 말 함부로 못합니다

훗날 내 삶의 마지막 날에
최후의 한마디만
겨우 할 수 있는 시각에
유언처럼 말하겠습니다
그때
정말 태산이 무너져 내리도록
정녕 하늘이 산산조각 나도록
크나큰 울림으로
고맙다고 말하겠습니다
감사하다고 말하겠습니다
(이충기·중추마비 시인, 1953-)


+ 유언

나 죽으면 바다에 던져 고기밥으로 주어도 좋고 산에 뿌려
금수들의 한끼 겨울양식이 되어도 좋다. 쓸만한 장기는 세상에서
낮은 동무에게 기증하고 화장을 해 흔적을 남기지 말아다오.
죽은 날은 지키되 형제간의 우애의 자리가 되게 하고 제사는
지내지 말아다오. 내 아들 하영이 딸 지영아! 너희를 키우기
위해서란 변명을 아무리 둘러대도 아비의 본성은 양의 가면을
쓴 늑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죄를 방귀처럼 달고 다녔고
알면서 저지른 비열한 죄가 인생의 그물에 가득하구나.
몸이 가루가 되도록 사용하지 않은 인생을 허비한 죄.
인생의 근본은 신의 영역이란 것을 알면서 회의한 죄.
자연을 업수이 여기고 능멸한 죄.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지 않은 죄.
오직 몸의 평안만을 위하여 살아온 시간들이 우우 일어나서
나를 비웃고 있구나.

짐승스런 하루를 접으며 너희에게 간구하노니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를 빼앗기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자들의
말동무 같은 삶이라면...
(전홍준·시인)


+ 유언

어느 외국인 죽으면서 유서를 두 통 남겼다
하나는 장의사 앞으로 남겼는데
눈 내리는 날 새벽
시내 공원에 묻어 달라는 것이었다
다른 한 통의 유서에는
그날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주라고 40만 불을 두고 갔다
눈을 맞으며 찬송가를 불러준 사람은
모두 네 명이었다

어느 노동자는 유서 한 통 남기지 않고 죽었다
그의 아내는 병든 남편을 두고
새벽에 종적을 감췄다
그는 아내를 원망하지 않았다
차라리 아내를 위해 기도하고 싶었다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은 없었고
그는 남에게 나누어 줄 재산도 없었다
그는 종교도 없었다
쓸쓸한 첫눈만이
그의 무덤을 덮고 있었다
(강세환·시인)


+ 유언장 쓰기

어떻게 쓸까?
언젠가는 가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흔적을 남겨야 한다.

살아 왔던 과정을
구차하게 변명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유언장이란
짧을수록 좋다

살아온 날들을 요약하고
정리하여야 한다
좋은 일보다 언짢은 일
참회해야 할 일
청산해야 할 일들,

사랑을 여러 번 했더라도
홍안과 미소와 죽음보다
백발과 눈물과 건강을 더욱 더
사랑했던 기억만으로도 족하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아니다
누구를 위하여 살아왔는가이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이 시작이라는 것이다

자질구레한 기억들
꿈, 동창생, 천렵이라든가
추억, 복권, 여행에서 얻은 경험들
기록으로 남길 필요는 없다.

가격보다는 가치가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

신발을 신고
어디에 갔었는냐는 필요 없고
무엇 때문에 갔는냐가 소중하다
내가 누구로 간주되고 있는가를 써라

그리고 맘속에 꺼림칙한 일들은
모두 진솔하게 자백하라
입의 모습이 중요치 않고
무엇을 말하는가가 중요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일까
지옥을 천국으로 만드는
그것은 순박한 천민의 양심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 원리다.
(윤덕명·시인)


+ 유언(遺言)

내 죽거들랑
비석을 세우지 마라.

한 폭 베쪼각도
한 장 만가(輓歌)도
통 걸지 마라.

술값에
여편네를 팔아먹고
불당(佛堂) 뒤에서
친구의 처를 강간하고
마지막엔
조상의 해골을 파 버린 사나이

어느 산골짜기에
허옇게 드러내 놓은 채
개처럼 죽어 자빠진
내 썩은 시체 위에
한줌 흙도
아예 얹지 마라.

이제
한 마리의 까마귀도 오지 않고
비바람 불며
번갯불 휘갈기는 밤

내 홀로
여기 나자빠져
차라리 편안하리니

오! 악의 무리여
모두 오라.
(박기원·시인)


+ 행복한 왕자 - 제비의 유언

참 신기한 일이네요
지금은 몹시 추운 겨울인데도
무척 따뜻한 느낌이에요.
왕자님 칼자루에 박혀 있던 루비는
병든 아이를 살리는 알약이 되고
왕자님 슬픈 두 눈으로 빛나던 에메랄드는
가련한 시인의 꿈과
성냥팔이 소녀의 웃음이 되고
왕자님 몸을 가두고 있던 순금 조각은
가난한 사람들의 양식이 되었어요.
참 신비한 일이네요.
이젠 영원히 날 수 없는데도
따뜻한 이집트를 더는 볼 수 없는데도
무척 행복한 느낌이에요.
이제 내가 들어가 쉴 곳은
당신의 심장, 당신의 썩지 않는 마음.
나 그 안에 살며 영원히 썩지 않을 거예요.
당신의 심장, 당신의 썩지 않는 마음이
내가 영원히 노래할 천국이니까요.
내 날개의 유일한 쉴 곳일 테니까요.
(유용선·시인, 196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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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다 화장해라
너무 슬퍼하지 마라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건강이 안 좋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을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하나만 세워 달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지금도 너무 안타까워요..
이분은 대통령이 되지 말아야했어요..


(2010.09.20 10: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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