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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관한 시 모음> 이해인의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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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관한 시 모음> 이해인의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외

+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7월은 나에게
치자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
하얗게 피었다가
질 때는 고요히
노란빛으로 떨어지는 꽃

꽃은 지면서도
울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눈물 흘리는 것일 테지요?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
그가 지닌 향기를
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

설레일 수 있다면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 향기를 맡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꽃밭이 될 테지요?

7월의 편지 대신
하얀 치자꽃 한 송이
당신께 보내는 오늘
내 마음의 향기도 받으시고
조그만 사랑을 많이 만들어
향기로운 나날 이루십시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7월의 편지

7월의 태양에서는 사자새끼 냄새가 난다.
7월의 태양에서는 장미꽃 냄새가 난다.

그 태양을 쟁반만큼씩
목에다 따다가 걸고 싶다.
그 수레에 초원을 달리며
심장을 싱싱히 그슬리고 싶다.

그리고 바람,
바다가 밀며 오는,
소금냄새의 깃발, 콩밭 냄새의 깃발,
아스팔트 냄새의, 그 잉크빛 냄새의
바람에 펄럭이는 절규---.

7월의 바다의 저 출렁거리는 파면(波面)
새파랗고 싱그러운
아침의 해안선의
조국의 포옹.

7월의 바다에서는,
내일의 소년들의 축제 소리가 온다.
내일의 소녀들의 꽃비둘기 날리는 소리가 온다.
(박두진·시인, 1916-1998)


+ 7월의 바다

아침 바다엔
밤새 물새가 그려 놓고 간
발자국이 바다 이슬에 젖어 있다.

나는 그 발자국 소리를 밟으며
싸늘한 소라껍질을 주워
손바닥 위에 놓아 본다.

소라의 천 년
바다의 꿈이
호수처럼 고독하다.

돛을 달고, 두세 척
만선의 꿈이 떠 있을 바다는
뱃머리를 열고 있다.

물을 떠난 배는
문득 나비가 되어
바다 위를 날고 있다.

푸른 잔디밭을 마구 달려
나비를 쫓아간다.
어느새 나는 물새가 되어 있었다.
(황금찬·시인, 1918-)


+ 7월

바다는 무녀(巫女)
휘말리는 치마폭

바다는 광녀(狂女)
산발(散髮)한 머리칼,

바다는 처녀(處女)
푸르른 이마,

바다는 희녀(戱女)
꿈꾸는 눈,

7월이 오면 바다로 가고 싶어라,
바다에 가서
미친 여인의 설레는 가슴에
안기고 싶어라.

바다는 짐승,
눈에 비친 푸른 그림자.
(오세영·시인, 1942-)


+ 7월

앵두나무 밑에 모이던 아이들이
살구나무 그늘로 옮겨가면
누우렇던 보리들이 다 거둬지고
모내기도 끝나 다시 젊어지는 산과 들
진초록 땅 위에 태양은 타오르고
물씬물씬 숨을 쉬며 푸나무는 자란다

뻐꾸기야, 네 소리에도 싫증이 났다
수다스런 꾀꼬리야, 너도 멀리 가거라
봇도랑 물소리 따라 우리들 김매기 노래
구슬프게 또 우렁차게 울려라
길솟는 담배밭 옥수수밭에 땀을 뿌려라

아, 칠월은 버드나무 그늘에서 찐 감자를 먹는,
복숭아를 따며 하늘을 쳐다보는
칠월은 다시 목이 타는 가뭄과 싸우고
지루한 장마를 견디고 태풍과 홍수를 이겨내어야 하는
칠월은 우리들 땀과 노래 속에 흘러가라
칠월은 싱싱한 열매와 푸르름 속에 살아가라
(이오덕·소설가, 1925-2003)


+ 7월, 아침밥상에 열무김치가 올랐다

흙은 원고지가 아니다. 한 자 한 자 촘촘히 심은 내 텃밭의 열무씨와 알타무씨들
원고지의 언어들은 자라지 않지만 내 텃밭의 열무와 알타리무는 이레만에 싹을 낸다
간밤의 원고지 위에 쌓인 건방진 고뇌가 얼마나 헛되고 헛된 것인가를
텃밭에서 호미를 쥐어보면 안다
땀을 흘려보면 안다 물기 있는 흙은 정직하다
그 얼굴 하나 하나마다 햇살을 담고 사랑을 틔운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내 텃밭에 와서 일일이 이름을 불러낸다

칠월, 아침밥상에 열무김치가 올랐다
텃밭에서 내가 가꾼 나의 언어들
하늘이여, 땅이여, 정말 고맙다
(김종해·시인, 1941-)


+ 사랑은 큰일이 아닐 겁니다

사랑은 큰일이 아닐 겁니다
사랑은 작은 일입니다
7월의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
한낮의 더위를 피해 바람을 불어 주는 일
자동차 클랙슨 소리에 잠을 깬 이에게
맑은 물 한 잔 건네는 일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손등을 한 번 만져 보는 일

여름이 되어도 우리는
지난 봄, 여름, 가을, 겨울
작은 일에 가슴 조여 기뻐했듯이
작은 사랑을 나눕니다
큰사랑은 모릅니다
태양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이라는
지구에서 큰 사랑은
필요치 않습니다
해 지는 저녁 들판을 걸으며
어깨에 어깨를 걸어보면
그게 저 바다에 흘러 넘치는
수평선이 됩니다

7월의 이 여름날
우리들의 사랑은
그렇게 작고, 끝없는
잊혀지지 않는 힘입니다
(박철·시인, 1960-)


+ 7월의 고백

여린 태를 벗은 초목들의 뿌리는 힘차게 물을 빨아들이고
햇빛에 반짝이는 잎들은 왕성한 화학작용을 하며
대기는 신선한 공기들로 가득 찹니다.
그 나무의 꽃과 열매와 잎을 먹으며
애벌레와 곤충과 새들이 자라고 번성할 때
대지는 소란하고 풍성해집니다.

주님께서 지으신 세상은
풀 한 포기에서 우주 끝까지
탄생부터 그 소멸에 이르기까지
계획되지 않은 것,
아름답지 않은 것
완벽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 속에 앉아
주님 계획대로 아름답게, 완벽하게 지어진
나를 어루만지며 가만히 속삭입니다.
나를 사랑합니다.
나를 사랑합니다.
나를 이루는 너를 사랑합니다.
그 안에 온통 주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김경주·시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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