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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에 관한 시 모음> 정두리의 '소나무' 외

도토리 조회 2,43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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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에 관한 시 모음> 정두리의 '소나무' 외

+ 소나무

나이테를 보지 않고
눈어림으로 알 수 있는 버젓한 어깨

튼튼한 다리가
보기 좋다.

꽃보다 더 나은
푸른 솔이 좋다.

이런 거구나
이래야 하는구나.

냄새도 빛깔도
이름과 닮은
의젓한 나무.

네 모습을 보면서
소나무야
꿈까지 푸르게 꾸고 싶다.
(정두리·시인이며 아동문학가, 1947-)


+ 소나무

소나무의 이름은
솔이야
그래서 솔밭에
바람이 솔솔 불면
저도 솔솔 하고
대답하며
저렇게 흔드는 거야
(이문구·소설가, 1942-2003)


+ 소나무

생각이 바르면 말이 바르다.
말이 바르면 행동이 바르다.
매운바람 찬 눈에도 거침이 없다.
늙어 한갓 장작이 될 때까지
잃지 않는 푸르름.
영혼이 젊기에 그는 늘 청춘이다.
오늘도 가슴 설레며
산등성에 그는 있다.
(유자효·시인, 1947-)


+ 소나무에 대한 예배

학교 뒷산 산책하다, 반성하는 자세로,
눈발 뒤집어쓴 소나무, 그 아래에서
오늘 나는 한 사람을 용서하고
내려왔다. 내가 내 품격을 위해서
너를 포기한 것이 아닌,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것이
나를 이렇게 휘어지게 할지라도.
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이 地表 위에서 가장 기품 있는
建木; 소나무, 머리의 눈을 털며
잠시 진저리친다.
(황지우·시인, 1952-)


+ 소나무

한 발만 더 디디면 벼랑인데 바로 거기서 뿌리를
내리는 소나무가 있다 자세히 보면 소나무는
늘 바르르 떨고 있는데, 에멜무지 금방 새로 변해
날아가도 아무도 탓하지 않을 아슬함으로 잔뜩
발돋움한 채 바르르 떨고 있는데, 아직도 훌쩍
날아가지 않고 서 있는 저 나무가 기다린 것은 무어냐
(송재학·시인, 1955-)


+ 새해, 소나무를 보며

올해는 저 소나무가
뾰족한 잎을 펴서
빗방울 하나라도
제 손으로 받아내며
공(空)으로 듣는 새소리
갚을 일이 있을까

아니면 더 푸르게
새의 눈을 찌르고서
뾰족한 잎만 봐도
저절로 울어대는
새들의 노래 소리를
공(空)으로 또 들을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저 푸른 생각 끝에
송홧가루 가득 품어
임 오는 윤사월에
백년을 기다려 사는
그리움을 말하려나
(임영석·시인, 1961-)


+ 리기다소나무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한 그루 리기다소나무 같았지요
푸른 리기다소나무 가지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던 바다의 눈부신 물결 같았지요

당신을 처음 만나자마자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솔방울이 되길 원했지요
보다 바다 쪽으로 뻗어나간 솥가지가 되어
가장 부드러운 솔잎이 되길 원했지요

당신을 처음 만나고 나서 비로소
혼자서는 아름다울 수 없다는 걸 알았지요
사랑한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인 줄 알았지요
(정호승·시인, 1950-)


+ 소나무 숲에는

소나무 숲에는 뭔가 있다
숨어서 밤 되기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은근할 수가 있는가
짐승처럼 가슴을 쓸어 내리며
모두 돌아오라고, 돌아와 같이 살자고 외치는
소나무 숲엔 누군가 있다
어디서나 보이라고, 먼데서도 들으라고
소나무 숲은 횃불처럼 타오르고 함성처럼 흔들린다
이 땅에서 나 죄 없이 죽은 사람들과
다치고 서러운 혼들 모두 들어오라고
몸을 열어놓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바람 부는 날
저렇게 안 우는 것처럼 울겠는가
사람들은 살다 모두 소나무 숲으로 갔으므로
새로 오는 아이들과 먼 조상들까지
거기서 다 만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나라 밥 짓는 연기들은
거기 모였다가 서운하게 흩어지고
소나무 숲에는 누군가 있다
저물어 불 켜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을 기다리는 누군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날마다
저렇게 먼데만 바라보겠는가
(이상국·시인, 1946-)
  

+ 소나무의 나라

잊을 수 있을까, 소나무의 나라
언젠가 돌아가 누울
우리들의 나라
손금으로 흐르는 삶의 강물이 비치는
영혼이 흐리다
우리의 삶은 모래 위를 지나는 발자국
발을 들면 다른 모든 것들과 같은
허물어지는 형태를 하고
바람에 잊혀지는 흔적들
영원한 진리는 어디에 있나
영원한 나라는?
누구보다 맑은 영혼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가 바라보며 눈 감을 나라
소나무의 뿌리를 찾아다니는
잘 보존된 당신의 물
모래 먼지가 지워버린 그림
소나무의 나라, 하지만 이제는
잊을 수 없지만 잊혀지는 나라
차가운 가슴으로도,
별을 보지 않고도 너끈하게 살아가는
오늘의 사람들에도
눈물은 그냥 흘러가고
그냥 흘러가는 이 땅은
우리들이 기다리는 천국이 아니다

우리는 왜 외로운가
잊혀져 있을 수 없는
내 속에 자라는 나무
없어지고 사라지는 어떤 것에도
자신의 영혼을 바칠 수 없어
헤매던 숱한 날들의 기억이
모래 위의 흔적이 되어지고
우리들의 천국은 사막이 아니다

바람이 소나무 위에 앉는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
사랑을 위해 바친 목숨도 아름다워라
바람은 어제도 내일도 불지만
또 그렇게 부는 것만은 아니고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진리의 물
내 눈앞에서 잊혀지는 소나무의 나라
내 사랑의 나라
(서정윤·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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