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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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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을 노래하는 시 모음> 정연복 시인의 '우정'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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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을 노래하는 시 모음>  정연복 시인의 '우정' 외

+ 우정

연인들의 사랑이
장미꽃이라면

벗들의 우정은
들꽃 같은 것

장미꽃은 눈부시지만
어느새 검게 퇴색하여도

들꽃은 볼품없어도
그 향기 은은하다

사랑의 맹세는
아스라이 물거품 되어도

우정의 언약은
길이길이 변함없는 것

사랑이 떠나
슬픔이 밀물 지는 때에도

우정은 남아
말없이 생명을 보듬는다


+ 벗의 노래

홀로는 이슬 하나의
무게도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작고 여린 꽃잎들이

층층이 포개어지고
동그랗게 모여
이슬도, 바람도 너끈히 이긴다

하나의 우산 속에
다정히 밀착된
두 사람이

주룩주룩 소낙비를 뚫고
명랑하게 걸으며
사랑의 풍경을 짓는다

가파르게 깊은 계곡과
굽이굽이 능선이 만나서
산의 너른 품 이루어

벌레들과 새들과 짐승들
앉은뱅이 풀들과 우람한 나무들
그 모두의 안식처가 된다

나 홀로는 많이 외로웠을 생(生)
함께여서 행복한  

참 고마운 그대여,
나의 소중한 길벗이여


+ 벗에게

누구에게나
외롭고 쓸쓸한
삶의 뒤안길이 있다

어느새
반 백년의 세월이 스친
나의 인생살이에도

이제 와 뒤돌아보니
외로움의 그늘 한줄기
길게 드리워 있었네

생각처럼 쉽지 않아
고단함이 쌓이는 삶 속에
가끔은 남몰래
안으로 눈물 삭였지

하지만 벗 하나 있어
기둥처럼 든든한
그런 벗 하나 맘속에 있어

나 지금껏 살아왔네
나 기쁘게 살아가리


+ 집

한세상 살면서
나도 남들처럼

어엿하게 집 한 칸
가져 보았으면 좋겠네

그 집 대문에
큼지막한 글자로

내 이름 석 자도
벼슬처럼 새겼으면 좋겠네

내가 살아서
여나문 명의 벗들

나 지상을 떠난 다음에도
문득 추억에 이끌려

두엇 친구
불시에 들러도 좋은

그저 허름한
사랑의 집 하나

마음에 지었으면
참 좋겠네


+ 벗에게

밤을 지새워
술잔을 주고받으며

우리 첫 만남의
순간을 거슬러 올라갔어도

인연의 실타래는
영영 수수께끼로 남았네

삼십 오 년은 되었을까
시간의 틈을 훌훌 넘어

흐르는 세월도 잊고
나이도 까맣게 잊고

이렇게 함께
봄 산의 꽃길을 오르며

연둣빛 새싹으로
되살아오는    

저 옛날
너와 나의 마음속에 살았을
동심(童心)


+ 벗에게

연세대학교 정문을 나와
굴다리 몇 걸음 지나
첫째 골목 왼편 모퉁이

정다운 부뚜막이 있는
작은 선술집에서
통성명을 하고
걸쭉한 막걸리에 흠뻑 취하며

우리가 벗의 인연을 맺은 지
만 삼십 삼 년

빛나던 청춘의 날은 가고
어느새 우리의 인생살이
중턱을 훌쩍 넘어
내리막을 달리고 있네

얼굴도 성격도 꿈도 달랐지만
우린 벗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서로에게 든든한 생의 기둥이었지

그 동안 다들 사는 게 바빠
긴 세월 우리의 만남은
가뭄에 콩 나듯 했지만

서로의 맘속 깊은 곳
옹달샘에서
우정은 가뭄 들지 않았다

참 고마운 벗이여
우리의 아름다운 우정이여


+ 벗의 이름에 부치는 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끈한 오뎅 국물 사이에 놓고

벗과 다정히 마주앉아
소주잔이라도 기울이는 날엔

고까짓 한겨울 추위쯤이야
거뜬히 이기고도 남지

바람처럼 구름처럼 세월은 흘러
그 친구도 쉰 살을 훌쩍 넘었지만

동화 속 어린 왕자를 닮아
호수처럼 맑은 눈빛 영롱하네  

정(情)이야 안으로 감추었어도
세월 가면 모두들 알게 되지

그 친구가 얼마나
마음속 깊이 따뜻한 사람인 줄

호탕함이
보이지 않는 마음의 크기를 이른다면

몸집은 좀 작아도
마음 씀씀이는 하늘같은

그 친구는
진짜 사내대장부다
  

+ 벗에게

우리가 벗의 인연을 맺은 지
벌써 삼십 년이 훌쩍 넘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에도
너는 참 한결같았지

들꽃처럼 순한 눈빛
산같이 흔들림 없는 삶

그런 너의 모습
이따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세상 살아갈
새 힘을 얻곤 했지

이제 저만치
우리 목숨의 끝도 보이는데

남은 세월에는
우리의 참된 우정  
더욱 알뜰히 가꾸어 가자

한세월 같이 가는
고마운 벗이여

* 정연복(鄭然福) : 1957년 서울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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