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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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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특집 시 모음> 천상병 시인의 '난 어린애가 좋다' 외

도토리 조회 1,74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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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특집 시 모음> 천상병 시인의 '난 어린애가 좋다' 외


+ 난 어린애가 좋다

우리 부부에게는 어린이가 없다.
그렇게도 소중한
어린이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난
동네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요놈! 요놈 하면서
내가 부르면
어린이들은
환갑 나이의 날 보고
요놈! 요놈 한다.

어린이들은
보면 볼수록 좋다.
잘 커서 큰일 해다오!
(천상병·시인, 1930-1993)


+ 볍씨 하나

볍씨 하나가 싹 틔우고
이삭을 맺기까지
저 혼자 힘으로는 어림없어

햇볕도 적당히
비도 적당히
바람도 적당 적당히

가뭄이 들어도
홍수가 나도
태풍이 불어도

서로 양보하고 힘 합쳐
조그만 볍씨 하나
알곡을 맺게 한 거야

엄마 아빠의 칭찬과 꾸지람
그 속에 담긴 사랑과 걱정
골고루 먹고 자라는
우리도 하나의 볍씨인 거야.
(박예분·아동문학가)


+ 내가 없으면

학교에선
있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
게시판에 걸려 있는 그림 같은 나
넓은 운동장에 박힌 병뚜껑 같은 나
집에 가면 다르다

외양간 송아지 등 긁어 주고
마당 가운데 널어 둔
고추도 거둬들인다
들에 가신 엄마 아빠
돌아오기 전
마당도 깨끗이 쓸어 놓는다

내가 없는 우리 집
토끼장의 토끼가 저녁 굶는 날.
(박혜선·아동문학가)


+ 내가 있어서

흔들어주고
속삭여주고
간질여주고

그런
바람이 없으면
나무가 얼마나 재미없겠니

달려가고
넘어지고
올라가고

그런 바람 재울 날 없는
내가 있어서
우리 엄마
얼마나 재미있겠니.
(김미라·아동문학가)


+ 어른이 되면

"여보, 여기 앉아 보세요.
발톱 깎아 드릴 테니."

"아니, 만날 어깨 아프다면서
무슨 일을 그렇게 많이 해요."

하루 일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 어머니는
밤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서로 발톱을 깎아 주고
서로 어깨를 주물러 줍니다.

그 모습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도 빨리 장가들고 싶습니다.

어른이 되면
어머니 같은 여자 만나서
아버지처럼 살고 싶습니다.
(서정홍·농부 시인, 1958-)


+ 나도 씨앗

씨앗은 아무리 작아도
"쪼그만 게!"
얕보지 않아.

그런데 친구들은 나만 보면
"쪼그만 게!"
깔보지 뭐야.

알고 보면 나도 씨앗인데
이담에 큰 나무가 될 씨앗인데.
(윤수천·아동문학가, 1942-)


+ 재춘이 엄마  

재춘이 엄마가 이 바닷가에 조개구이 집을 낼 때
생각이 모자라서, 그보다 더 멋진 이름이 없어서
그냥 `재춘이네`라는 간판을 단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뿐이 아니다
보아라, 저
갑수네, 병섭이네, 상규네, 병호네.

재춘이 엄마가 저 看月庵(간월암) 같은 절에 가서
기왓장에 이름을 쓸 때
생각나는 이름이 재춘이 밖에 없어서
`김재춘`이라고만 써놓고 오는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만 그러는 게 아니다
가서 보아라. 갑수 엄마가 쓴 최갑수, 병섭이 엄마가 쓴 서병섭,
상규 엄마가 쓴 김상규, 병호 엄마가 쓴 엄병호.

재춘아. 공부 잘해라!
(윤제림·시인, 1960-)


+ 대단한 일

백일도 미처 안 된 아기가
까딱까딱 흔들흔들 온 몸이 빨개지면서
고 가느다란 목을 가누는 일
따져보면 정말이지 대단한 일인 거야.
드넓은 우주 가운데 해처럼 방실!
난생처음 얼굴 떠올리는 날이잖아.

흔들흔들 바들바들 몸을 떨다가
엉덩방아 쿵!
찍고는 울음보 와~ 하고 터트리는
그러다가 마침내 첫발을 내딛는
아가들의 발바닥 생각을 하면
이처럼 대단한 일도 없을 것 같아.
고 작고 앙증맞은 발바닥으로
지구 가운데 꽝! 도장
처음으로 찍는 순간이란 말이거든.

그날 이후
십년…… 이십년…… 삼십년을
부지런히 달려가서
청년이 되고, 군인이 되고, 소방관이 되고
의사가 되고, 가수가 되고, 박사가 되고  
(한혜영·아동문학가, 1953-)


+  노근이 엄마

내 가장 친한 친구
노근이 엄마가
지하철역 남자 화장실
청소 일을 하신다는 것을 알고부터
나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오줌을 깨끗하게 눈다.
단 한 방울의 오줌도
변기 밖으로 흘리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노근이 엄마가
원래 변기는 더러운 게 아니다.
사람이 변기를 더럽게 하는 거다.
사람의 더러운 오줌을
모조리 다 받아주는
변기가 오히려 착하다.
니는 변기처럼 그런 착한 사람이 되거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정호승·시인, 1950-)


+ 어른이 되면

어른이 되면
난 수염을 기르겠다.
멋진 넥타이를 매고
구두를 신고
점잖은 신사가 되겠다.

어른이 되면
가고 싶은 먼데도 가보고
하고 싶은 많은 일도 해보고

참,
어른이 되면
아이들과 잘 놀아주겠다.

함께 뛰며, 웃으며
그러다가
다시 어린이가 되고 싶다.


어린아이
이대로가 좋다.
(조명제·아동문학가)


+ 팽이

나는 팽이,
엄마는 채찍
아침잠을 조금만 더 자고 싶은데
엄마는 한사코 나를 일으켜요.

엄마는 채찍,
내 몸에 감기는 채찍
게임을 조금만 더하고 싶은데,
미술 학원 가라!
보습 학원 가라!

나는 뱅뱅 도는 팽이,
아이쿠, 어지러워!
쓰러질 듯한 팽이!
(서재환·아동문학가, 1961-)


+ 문제아

툭하면 지각하고
말도 공부도 느려
문제아로 찍힌
우리 반 순열이

시키지 않아도
화분에 물주고
나뭇잎에 앉은 먼지도 닦아준다

공놀이 시간 공차기는 못해도
멀리 날아간 공은 먼저 가져오는
문제아 순열이

이럴 땐
문제아로 쾅 못 박은 우리가
더 문제 같다
(현경미·아동문학가)


+ 난 어린이가 좋아

난 어린이가 좋아.

이 세상 모두들
그를 닮았으면 좋겠어
나이 많고 빈 병 같은
어른들은 싫어.

어린 나이에
모르는 걸 배우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어린이가 좋아.

난 어린이가 좋아.

이 세상 모두들
그를 닮았으면 좋겠어.
나라를 위한다면서
내 주장만 내세우고
내 욕심만 차리는
거짓말투성이 어른들은 싫어.

동무끼리 다정하게 공부하면서
배고픈 동무들을 걱정해 주고
밥 한끼 나눠 먹는 어린이가 좋아.

난 어린이가 좋아.

이 세상 모두들
그를 닮았으면 좋겠어.
걸핏하면 웅성웅성
데모하는 어른들은 싫어.
오순도순 사귀면서
지혜로 자라는 어린이가 좋아.

이 세상 모두들
그를 닮았으면 좋겠어.
두 동강 난 우리 나라
통일 못 이루고
형제끼리 맞서는 어른들은 싫어.

금강산 마을
제주도 섬마을

서로서로 손잡고 노래부르는
어린이가 난 좋아.
(이정훈·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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