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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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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특집 시 모음> 김남주 시인의 '민중'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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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특집 시 모음>  김남주 시인의 '민중' 외

+ 민중

지상의 모든 부
쌀이며 옷이며 집이며
이 모든 것의 실질적인 생산자들이여

그대는 충분히 먹고 있는가
그대는 충분히 입고 있는가
그대는 충분히 쉬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결코!
그대는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먹고 있다
그대는 가장 많이 만들고 가장 춥게 입고 있다
그대는 가장 오래 일하고 가장 짧게 쉬고 있다

이것은 부당하다 형제들이여
이 부당성은 뒤엎어져야 한다

대지로부터 곡식을 거둬들이는 농부여
바다로부터 고기를 길러내는 어부여
화덕에서 빵을 구워내는 직공이여
광맥을 찾아 불을 캐내는 광부여
돌을 세워 마을에 수호신을 깎아내는 석공이여
무한한 가능성의 영원한 존재의 힘 민중이여!

그대의 삶이 한 시대의 고뇌라면
서러움이라면 노여움이라면
일어나라 더 이상 놀고먹는 자들의
쾌락을 위해 고통의 뿌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빼앗는 자가 빼앗김을 당해야 한다
이제 누르는 자가 눌림을 당해야 한다
바위 같은 무게의 천년 묵은 사슬을 끊어 버려라
싸워서 그대가 잃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쇠사슬 밖에는 승리의 세계가 있을 뿐이다
(김남주·시인, 1946-1994)


+ 노동의 새벽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박노해·시인, 1958-)


+ 노래여, 노동자의 영혼을 깨워다오

노래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사람의 가슴과 가슴이 뜨겁게 만날 수 있겠는가

자유의 노래가 아니라면 어떻게
인간의 가슴에 영혼이 있음을 알겠는가

투쟁의 노래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잠자는 혁명의 영혼을 깨울 수 있겠는가

연대의 노래가 아니라면 어떻게
나의 피가 당신의 심장으로 건너가고
당신의 피가 나의 심장을 끓이겠는가

노래를 일으켜다오
고개 숙인 투쟁의 노래를 일으켜
자유의 하늘에 펄럭이게 해다오
차가운 머리로 우리를 분열시키지 말아다오
회색이론으로 우리 가슴을 잿더미로 만들지 말아다오
대지의 노래가 있기에 들판은 저토록 푸르고
생명의 노래가 있기에 강물은 저토록 힘차게 흐른다네

노래를 일으켜다오
비겁하게 떨고 있는 저 가슴에
망설이고 있는 저 미지근한 심장에
비웃고 있는 저 식어빠진 심장에
노래를 일으켜다오
투쟁의 노래가 아니라면 무엇이 노동자의 핏줄에
뜨거운 피를 출렁이게 하겠는가

가슴이 있는 자는 알리라
노래를 앞세우지 않고 우리는
단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었다는 걸
노래를 앞세우지 않고 우리는
단 한 번도 승리할 수 없었다는 걸

노래를 일으켜다오
고난의 노래
자유의 노래
해방의 노래를
노동자의 투쟁의 역사를 안고
먼 길 달려온 저 고난의 노래를
사슬을 끓고 바람처럼 일어나
자유를 향해 달려온 해방의 노래를
노동자가 노동자임을 감격스럽게 하는
저 순결한 투쟁의 노래를

노래를 일으켜다오
오, 뜨거운 노래를 일으켜다오
노동자의 노래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잠자는 혁명의 영혼을 깨울 수 있겠는가
(백무산·시인이며 노동운동가, 1955-)


+ 노동 1

야근의 핏발 선 눈동자 속으로 떨어지는 형광등 불빛 같은 것일까
프레스의 시퍼런 칼날 끝에서 떨어지는
살기일까 떨리는 손가락일까
캄캄한 밑바닥일까
아아 썩어가는 청춘 잊어버린 고향 흐느끼는 유행가 속에
소주를 붓고 쓰러져 잠드는 밤일까
몸부림 속으로 눈물 속으로
목구멍의 피비린내 속으로
터지는 외침은 무엇일까
(박영근·노동자 시인, 1958-2006)


+ 우리들을 위해 남기는 우리들의 이야기

아기를 낳아라
열이고 스물이고 아이들이 자라서
몽둥이 앞에 몽둥이가 되고
총칼 앞에 총칼이 되는
용가리 통뼈들이 될 때까지 누이들아

개꿈 용꿈 가리지 말고
딸 아들 가리지 말고
쉰이고 백이고 아기를 낳아라
주먹이 단단한 아이들 목소리가
우렁찬 아이들
모여서 거센 불길이 될 때까지
함성이 될 때까지

곰팡내 나는 족보 따지지 말고
학력 경력 외모 가리지 말고
가난해도 주눅들지 않는
속이 꽉 찬 애인을 만나거라

춥고 배고픈 밤일수록 따스한 사랑을 하거라
사랑이 깊으면 눈물도 나리
천이고 만이고
속이 꽉 찬 아이들을 낳아서
뜨거운 눈물도 물려주어라

누이들아
이 시대 가득가득 아기를 낳아라
아이들이 자라서
끓어 넘치는 사랑으로 자라서
빛나는 혁명이 될 때까지
(김해화·노동자 시인, 1957-)


+ 마당 회식

회식이 별건가,
카팅기에 나무를 퍽퍽 잘라서리
숭숭 구멍 낸 드럼통 안에다가
엇대고 기대고 가새지르고 포개서 올려놓고설라무네,  
설렁설렁 신나 좀 뿌리고 산소 불대를 솔솔 들이대면
아무리 지가 강철 철판이라도 안 오그라지고 배길 것이여.  
몇 방 용접 붕붕 지져 스텐 석쇠 만들어놓았겠다,
마늘 까놓았겠다,
고추, 상추, 깻잎, 씻어놓았겠다, 초장, 된장 사왔겠다,
개뿔이나 뭐가 걱정일 것이여.  

탄다, 장작이.
숯불은 일렁거리고, 조개는 쓱 아가리를 벌리고, 소라는 거품을 내뿜고
바지락은 뱃살을 오므리고, 낙지는 쩍쩍 입에 달라붙는데  

새뜻하게 만든 기계
시운전 끝냈겠다, 술술 물건 잘 뽑아 나오겠다,
덜컥 기분이 좋아버린 우리 공장장,
대천 웅천 시장바닥을 뱅뱅 돌고 후비고 누벼서
바리바리 훑어온
조개, 소라, 바지락, 낙지와 전어.

바쁘다, 바빠 술잔이 바빠.
벌건 코가 벌룽벌룽, 눈알이 찔끔찔끔  
고소하고 달고 매콤하고 쌉쓰름하고
손가락, 젓가락이 주책없이 바쁘구나, 바빠.

고놈의 것 잘 시집보냈으면 됐지, 줄창
야근한 것이 뭐가 그리 대수여.    
이번 월급은 제 날짜에 나오려나부지.
어서 술이나 한잔 푸셔.
똥구멍까지 쉬훤하게 찬술이 넘어 넘어가는데
사모님은 경리 아니랄까봐 에쿠, 술보초를 섰구나.

흐흐흐 덤벼라 덤벼,
종이컵이면 어때, 길 건너 매점의 배 사장도 덤비고,
깔고 앉은 각목에다가 말만한 궁둥이 좀 치받치면 어떠냐
밥집 아줌마도 덤비고,
크으, 덤벼라 덤벼,
카센타 느림보사장 박가도 기름장갑, 스패너 후다닥 던져버리고
목장갑 한 켤레 끼고 덤비고,
군포, 시흥, 부천을 두루두루 찍고 다시 돌아온
별수 없는 중국집 대머리 주방장 최가도 헐레벌레 덤비고,
사이사이 둘레둘레 서고 앉고 좁히고 들이밀고, 후루룩 크으,
고철, 철판, 기계 줄줄이 늘어선 좁은 공장을 들어낼 듯
공장마당이 요란 방자하게 뜰썩뜰썩하는데  
길가 담벼락마다 벚꽃으로 목련으로
사방천지가 환한 것까지 얼씨구나 좋구나.  

2차 어때,
아니 노래방부터, 아니야 당구장이 순서지,
들썽들썽 주장도 많고 사설도 많은
우리 청춘의 봄날은 이렇게 깊어 깊어만 갔는데  

그날, 우리 가슴에는 벚꽃보다 더 희고
명주조개보다도 속살 부드러운 것들이 소록소록 살았더라.  
(조영관·노동자 시인, 1957-2007)


+ 혁명

나는 자꾸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묵은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려봐도
진보단체 사이트를 이리저리 뒤져봐도
나는 왠지 무언가 크게 잃어버린 느낌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공단 거리를 걸어봐도
촛불을 켜봐도, 전경들 방패 앞에 다시 서봐도
며칠째 배탈 설사인 아이의 뜨거운 머리를 만져봐도
밤새 토론을 하고 논쟁을 해봐도
나는 왜 자꾸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까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
분명히 내가 잃어버린 게 한 가지 있는 듯한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송경동·시인, 1967-)


+ 김밥말이 골목  

암초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따개비모양
봉제공장들이 저를 단단하게 오므린 채 거꾸로 서서
수천 대의 재봉틀로 하루를 돌린다
자꾸 달아나는 시간을 노루발로 고정하고
아찔한 곡선박기로 내일을 꿈꿔보지만
어김없이 되돌아박기가 여공들을 꿰매버린다
햇빛 한 점 안 들어오는 지하 공장은 먼지로 포화상태,
재단사의 가위질은 쉼 없이 여공들의 꽁무니를 베어내지만
그래도 김밥말이 골목은 그녀들의 꼬리뼈에 매달려 있다
재단사의 줄자가 정오를 휘감으면
봉제공장 거리의 봉합선이 뜯기고
여공들이 한꺼번에 밥알처럼 쏟아져 나와
한 땀 한 땀 김밥말이 골목으로 향한다
양은냄비보다 먼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여공들은
수다를 첨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잘 통하지 않지만
김밥말이로 돌돌 말아 한통속이 된다
라면 다발과 함께 풀어지는 그녀들의 일상이
식당 아줌마의 손길을 거쳐 김밥에 뒤섞인다
식당 아줌마가 손으로 김밥을 꾹꾹 누를 즈음이면
그녀들은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다
접시에 담긴 김밥을 묵묵히 바라보며
그녀들은 옆구리가 터진 김밥처럼
네팔로 필리핀으로 소말리아로 연변으로
38선 이북으로 삐져나간다  
굶주린 가족들을 생각하면 일용할 양식도
독약처럼 치명적이어서
김밥을 목구멍에 넘길 수 없다
목구멍이란 얼마나 질기고 처절한 골목인가
과연 김밥 한 줄로 그 골목을 통과해도 되는 걸까
그녀들은 막막하고 까마득하다.
(최일걸·시인, 2008 전태일 문학상 우수작)


+ 아름다운 얼굴

너희들 무어라 그러느냐
그 험악한 군대에서도 3년의 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앞 둔 한두 달 정도는
열외를 받아 몸과 마음 편안히 하거늘
장장 33년의 기나긴 근무
온 생애를 바친 철도생활을 마치는
마지막 날, 그 날까지도 정확히
24시간의 철야근무를 마치고
쏟아지는 아침햇살 아래 부스스한 얼굴로
퇴임식에 임하는 저, 우물우물
짧은 퇴임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저,
말단의, 가난한, 이 땅의,
너희 애비의 얼굴을 보며 무어라
도대체 무어라 그러느냐

저 아름다운 얼굴을 향해
(박관서·시인이며 철도노동자, 1962-)


+ 우리들의 나라, 노동자 세상

이 세상의 맨 처음에
우린 우리들의 부모를 떠났고 우리들의 고향을 떠났다
이 세상의 맨 처음에
손발이 댕겅 잘리는 프레스 작업대에서 하꼬방 다락방 할미꽃으로 허리 꺾인 여공 시다로
우린 이 세상을 만들었다

이 세상의 맨 처음에
우린 배가 고파 밥을 달라고 하였다
춥고 배고파요 견딜 수 없어요, 제발 조금만 주세요 애원하였다
몇 사람이 무참히 피를 흘렸다, 몇 사람이 개같이 끌려갔다, 살진 돼지처럼 맞아 죽었다,

그리고 몇백만의 눈물이 이 세상을 홍수로 넘치게 하고서야
저들은 우리들의 헐벗고 발가벗은 몸을 겨우겨우 가려 주었고
우리들의 주린 배를 겨우겨우 채워 주었다
우리들이 지은 밥, 우리들이 만든 옷, 우리들이 쌓은 벽돌, 아아 우리들이 건설한 나라

우리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므로
우리들 몇 사람이 피 흘렸을 때 세상은 앞장서서 피를 흘렸고
몇 사람이 끌려갔을 때 세상이 앞장서서 끌려갔다
수백만이 눈물 흘렸고 부모와 처자식과 동지와 고향과 조국이, 온 세상이 더불어 눈물 흘렸다

우리들이 조금 더 많은 것을 저들에게 부탁했을 때
우리들은 기계가 아녜요, 우리들은 짐승이 아녜요, 인간답게 살고 싶어요 애원했을 때
저들은 왜놈의 장도칼로 우리들의 배를 쑤셨고, 파쇼경찰의 몽둥이로 우리들의 골통을 빠갰고, 미제의 총으로 우리들의 심장을 꿰뚫었다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고 수많은 사람이 끌려갔고 수많은 사람이 업수임당했고 수많은 사람이 능욕당했다
우리들이 지은 밥, 우리들이 만든 옷, 우리들이 쌓은 벽돌, 아아 우리들이 건설한 나라

우리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므로
우리들 수많은 사람이, 사람다운 노동자가 피를 흘렸을 때 세상은 온몸으로 피를 흘렸고
우리들 수많은 사람이, 사람다운 노동자가 끌려갔을 때 세상은 온몸으로 끌려갔다

이제 상처투성이 세상인 우리가 나서야 한다
떨쳐 일어나, 갈비뼈 부러지고 내장이 쏟아져 나온 이 세상을
세상인 우리가 뜯어고쳐야 한다
우리가 일어서지 않으면
세상이 일어서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해방되지 않으면
세상이 해방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피 흘리는 세상의 상처를 닦아내지 않으면
세상은 피 흘리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이 지은 밥, 우리들이 만든 옷, 우리들이 쌓은 벽돌, 아아 우리들이 건설할 나라

보다 나은 세상, 보다 나은 우리 스스로 다시 한 번 건설하기 위하여
우리는 전태일의 순결한 피로 평화의 세상을 이룰 것이다
우리는 김경숙의 꽃다운 피로 해방의 세상을 이룰 것이다
우리 김종태 박종만 박영진 김장수 오범근 아아 억울한 투쟁의 피로
만인의 전쟁에서 만인의 평화로
만인의 참혹함에서 만인의 아름다움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빛에서 피땀의 찬란한 삶으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투쟁으로 우리를 해방시키며
민족통일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아아 우리들의 나라,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아아 우리들의 나라, 만백성이 주인 되는 세상
(김정환·시인, 1954-)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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