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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에 관한 시 모음> 함민복 시인의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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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에 관한 시 모음>  함민복 시인의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외

+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
쉽게 만들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물컹물컹한 말씀이다
수천 수만 년 밤낮으로
조금 한 물 두 물 사리 한개끼 대개끼
소금물 다시 잡으며
반죽을 개고 또 개는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
(함민복·시인, 1962-)


+ 참다운 문명

참다운 문명은
산을 파괴하지 않고
강을 파괴하지 않고
마을을 망치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 않아야 하리
(다나카 쇼조·일본의 정치가, 1841-1913)


+ 문명은

우리는 문명이 생명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수도는 멸균되었지만 물맛을 잃었다.
형광등은 밝지만 세포를 파괴한다.
차는 빠르지만 걷기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야마오 산세이·일본 시인)


+ 참된 삶

북미의 백만장자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문맹의 인디언이
되는 게 낫다.
(체 게바라·아르헨티나 출신의 사회주의 혁명가, 1928-1967)

  
+ 거인 아파트

우리 집 옆에
키가 40층이나 되는
거인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2층짜리 우리 집은
난쟁이처럼 작아졌습니다.

거인 아파트는
먹성이 얼마나 좋은지
햇볕을 꿀꺽꿀꺽 삼켜 버리고
바람도 후룩후룩 마셔 버립니다.

우리 집에는 이제
음지 식물만 키워야겠습니다.
(박승우·아동문학가)


+ 고기만 먹을 거야

-난 야채 안 먹을 거야

고기만 먹을 거야

-그러면 야채가 서운하지

상추가 밭에서 꿀꿀, 기어다닐지도 몰라

쑥갓이 꼬끼오, 목을 빼고 울면 어떡할래?

시금치 이파리에 소뿔이 돋는다구!
(안도현·시인, 1961-)


+ 도시와 시골

같은 비행기 소리라도
우리 마을에선
집이 흔들리며 시끄러운데
시골 할아버지 댁에선
풀 뽑다 말고
하늘을 쳐다보며
허리를 펴게 한다.

같은 자동차 소리라도
우리 마을에선
창문을 꼭 닫아걸고
소리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데
시골 할아버지 댁에선
누가 오려나
자동차 소리를 기다린다.
(최갑순·아동문학가)


+ 신축 건물 철근 속에 둥지 튼 까치 신혼부부

까치는 이젠 더 이상
좋은 새가 아니다

인간 근처에서 내몰린
까치 한 쌍이
4월 봄  
예전엔 찬란했을 백제 궁궐터
왕궁에
함박눈발이 세차게 내린 날
엮어진 철근이 벌겋게 녹슬고
바람에 흔들려 위태로운 꼭대기에
새신랑 까치
나무줄기를 연신 나른다

먼 발치서
불안하게
지켜보던
새색시 까치
슬픈 눈하고
만삭 몸으로 둥지로 날아든다

내일
모레면
공구리칠 테고
쎄멘 속에 잠길
까치 신혼 둥지 속
아빠, 엄마 따사한 온기 속에
커가는
까치 알들이
슬프다
(고영섭·시인, 1963-)


+ 마음의 방  

방문을 열면
그 너른 들판이 펄럭이며 다가와
내 이야기를 듣는 벽이 된다

그저 떠돌던 바람도
큰 귀를 열고 따라 들어온다
커피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노라면

나는 잊혀진 왕족처럼 적막한 고독감과 함께
잃을 뻔한 삶의 품위를 기억해낸다
마음의 4분의 1은 외롭고 또 4분의 1은 가볍고
나머지는 모두
무채색의 따뜻함으로 차오른다

두어 개 박힌 대못 위에
수건 한 장과 거울을 걸어두는 것
그리고 몇 자루의 필기구만으로
문명은 충분한 것임을 깨닫는다

마음속이
작은 방만큼만 헐렁했으면
(김수우·시인, 부산 출생)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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