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삶에 관한 시 모음> 신광철 시인의 '사람'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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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삶에 관한 시 모음> 신광철 시인의 '사람' 외 + 사람 사람을 바라보면 눈물이 난다 사람으로 살아보니 그랬다 (신광철·시인) + 내 작은 어깨로 우리 동네 기타 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아저씨가 두리번거리다가 내 옆 빈 자리에 와 앉았다. 얼마 전 기계에 손가락이 잘렸다는 그 아저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옷자락에 손을 감추고 몹시 피곤한지 눈을 감더니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뜨거운 눈물과 함께 우리 나라 땅에 묻었을 새끼손가락 마디. 아저씨는 지금 바다 건너 먼 고향집을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는지도 몰라. 내 작은 어깨로 아저씨의 잠든 얼굴을 가만히 받쳐 주었다. (전병호·아동문학가) + 밥알 갓 지어낼 적엔 서로가 서로에게 끈적이던 사랑이더니 평등이더니 찬밥 되어 물에 말리니 서로 흩어져 끈기도 잃고 제 몸만 불리는구나 (이재무·시인, 1958-) + 얼음 강은, 겨울 동강은 자신을 사이에 둔 마을과 마을을, 강의 이편 저편 마을로 나누기 싫었던 것이다 자신을 사이에 두고 길은 끊어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길 도 끊어지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어린아이들도 괜히 강 건너 서로를 미워하며 돌을 던지거나 큰소리로 욕이나 해대며 짧은 겨울 한낮을 다 보내는 것이 슬펐던 것이다 하여, 강은 지난밤 가리왕산의 북풍한설北風寒雪을 불러 제 살을 꽝꽝 얼려버린 것이다 저 하나 육신공양肉身供養으로 강 이편 마을들과 강 저편 마 을을 한 마을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정일근·시인, 1958-) + 어깨동무하기 어깨동무하고 몰려다니는 구름들. 어깨동무하고 뻗어 있는 산들. 어깨동무하고 누워 있는 밭이랑들. 강물도, 파도도 파란 어깨동무. 어깨동무하기 사람들만 힘든가 보다. (신새별·아동문학가) + 상수리나무 상수리나무는 땅을 굳게 딛고 당당하게 서 있다.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 으리으리한 궁궐에 정원수가 될 생각은 없다. 뭇 사람들이 몰려들어 칭찬해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값비싼 귀한 몸이 되고 싶지도 않다. 나 또래와 더불어 사는 곳 남들 따라 꽃 피우며 열매 맺으며 가물면 같이 목이 마르고 너와 나, 우리가 함께 사는 곳 여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다. (최춘해·아동문학가) + 모두 함께 풀밭에는 철쭉, 장미, 목련만 있는 게 아니야. 씀바귀, 민들레도 피고 애기똥풀도 노란 얼굴을 쏘옥 내밀고. 풀밭에는 나비, 벌만 놀러 오는 게 아니야. 바람이 살그머니 지나가고 개미들도 소풍 나오고 하루살이 빙글빙글 춤을 추고. 우리 동네에는 우리 집만 있는 게 아니야. 석이네, 봄이네, 희연이네, 세탁소, 미장원, 문구점, 방앗간, 자전거 수리점도 있고. 우리 동네에는 사람 사는 집만 있는 게 아니야. 까치 집, 개미 집, 다람쥐 집. 새들이 쫑알쫑알, 고양이가 살금살금 모두 모여서 함께 사는 거야. (김위향·아동문학가) + 강물이 흐르며 먼저 가려고 다투지도 않고 처져 온다고 화도 안 낸다. 앞서 간다고 뽐내지도 않고 뒤에 간다고 애탈 것도 없다. 탈없이 먼길을 가자면 서둘면 안 되는 걸 안다. 낯선 물이 끼여들면 싫다 않고 받아 준다. 패랭이꽃도 만나고 밤꽃 향기도 만난다. 새들의 노래가 꾀어도 한눈 팔지 않고 간다. (최춘해·아동문학가) + 아름다운 만남 애들아! 지구를 살아 있게 하는 건 만남이란다. 초록별 지구를 숨쉬게 하는 참 아름다운 만남 새싹이 쏘옥, 눈뜰 수 있게 빗장문 열어 주는 흙 병아리 맨발이 시려울까 종종종 따라 다니는 아이들 참새, 토끼, 다람쥐, 고라니들의 추운 겨울을 위해 풀섶에 낟알곡 남겨두는 농부 어디 이것뿐이겠니? 작은 물결에도 놀라 두 눈이 동그래진 물고기 떼를 품어주는 바다풀 뿌리를 가지지 못한 겨우살이에게 가지 한 켠을 쓰윽 내어주는 물참나무 이런 아름다운 만남으로 지구는 푸르게 푸르게 숨쉬며 살아 있는 거야. (곽홍란·아동문학가) + 장작불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먼저 불이 붙은 토막은 불씨가 되고 빨리 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늦게 붙는 놈은 마른 놈 곁에 젖은 놈은 나중에 던져져 활활 타는 장작불 같은 거야 몸을 맞대어야 세게 타오르지 마른 놈은 단단한 놈을 도와야 해 단단한 놈일수록 늦게 붙으나 옮겨 붙기만 하면 불의 중심이 되어 탈 거야 그때는 젖은 놈도 타기 시작하지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몇 개 장작만으로는 불꽃을 만들지 못해 장작은 장작끼리 여러 몸을 맞대지 않으면 절대 불꽃을 피우지 못해 여러 놈이 엉겨 붙지 않으면 쓸모없는 그을음만 날 뿐이야 죽어서도 잿더미만 클 뿐이야 우리는 장작불 같은 거야 (백무산·시인, 1955-)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