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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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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삶과 죽음을 묵상하는 시모음> 서덕석의 '갈릴리 일기' 외 12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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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삶과 죽음을 묵상하는 시모음>   
 
 서덕석의 '갈릴리 일기' 외 12편의 시 
 
+ 갈릴리 일기 / 서덕석
 
별 다른 소문도 없었다.
순찰을 도는 로마 병정들은
여전히 여유만만하고
양떼를 몰고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목동들은
무표정했다.
 
바람도 머물러 있었다.
더러 따사로운 눈인사와
가난한 숨소리 속에서
목수 요셉의 아들은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고.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평범한 얼굴로 나무를 자르고
대패질을 배우면서
살아가는 길을 터득하였다.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생각에 잠긴 채 못질을 하다가
이따금 손가락을 때리고는
혼자서 멋쩍어하게 된 것은
 
심란한 날에는 호숫가를 찾았다
물새도 별 생각 없이
먹이를 구하고 새끼를 치지만
무슨 일이 그에게서 일어나고 있었는지
 
배를 탄 어부들이
그물을 걷어올릴 때
그들의 구릿빛 건강한 팔뚝에
햇살이 빛나는 것을 보고
그는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예수는
다음날 말없이 집을 떠났다.

 
+ 십자가(十字架) /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민들레 예수 / 최완택  
 
애당초 맨발 맨손으로 좁은 문을 나와
좁은 길로만 쭉 걸어와서
너네들이 밀고 밀어
발 디딜 땅조차 없이 밀어 만든
좁은 길로만 쭉 걸어와서
제 밀리고 밀려
공중에 달린 깃발처럼 나부껴야 할
이 몸뚱이
아, 역사의 한마당 예루살렘
이 언덕 아래가
바로 거기인데
어찌 맨발로 갈 수 있으랴
차라리 내 몸뚱이
어린 나귀 등에 실려 가리라.
 
양지바른 봄 언덕
비 안 와 황토 먼지만 펄펄 날아도
아직 매운 꽃샘바람 코허리를 잘라도
저기 삐죽이 얼굴 내밀어 수줍게 웃고 있는
민들레 한 송이
내 웃음
내 눈물
내 분노
내 희망
모두 네 안에 깊이 새기나니
뭇 사람의 사나운 발에 밟혀
천지 사방팔방에 흩뿌려져라

 
+ 기쁜 마음으로 / 박해석
 
너희 살을 떡처럼
떼어달라고 하지 않으마
너희 피를 한 잔 포도주처럼 찰찰 넘치게
따르어달라고 하지 않으마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앉은 바로 그 자리에서
조그만 틈을 벌려주는 것
조금씩 움직여
작은 곁을 내어주는 것
 
기쁜 마음으로

 
+ 예수 / 김준태
 
망치로
밤새도록
두드린들
 
1mm도
구부러질
수 없는
못 하나
 
오 그대의
죽음 하나

 
+ 오래된 길 / 최종진
 
신은 죽었다
예수, 그도 죽었다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어둠 속에서 나와
반짝, 순간에 사라졌다
어디로 가야 하나
돌아보는 눈길에
오래된 길 하나
그리움처럼 뻗어 있다.
 
 
+ 흑인 예수1 / 이동순
 
늘 혼자인 그분을
아침 공원에서 만났다
간밤에 덮고 잔 누더기를 깔고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깊고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전거를 밟는 여인
롤러 스케이트를 탄 청년
많은 사람들이 총총히 앞을 지나쳐 갔으나
누구 하나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세상의 바람은
천년 전과 마찬가지로 차가웠다
그분은 쓸쓸한 얼굴로 주머니를 뒤져서
찾아낸 담배꽁초에 불을 붙였다
서러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굴러서 땅에 떨어졌다

 
+ 청년 그리스도께 / 유안진    
 
숱한 남성을 짝사랑한 후에
가을수풀 되어버린 내 머리터럭
흙먼지만 날리는 사막 같은 가슴
 
그 어디쯤서
그대는 발견되었는가
 
내 미처
보아도 보지 못하는 눈
들어도 깨우치지 못하던 귀
그 누가 열어주어
 
아아 한스러운
이 몰골
이 행색
 
그대 어찌
이제사
내 앞에 뵈었는가
 
청년 그리스도
나의 사랑아

 
+ 나의 예수를 / 이해인
 
삶에 지치고
아픈 사람들이
툭하면 내게 와서 묻는다.
예수가 어디에 계시냐고
찾아도 아니 보인다고
 
오랜 세월
예수를 사랑하면서도
시원한 답을 줄 수 없어
답답한 나는 목이 메인다.
 
예수의 마음이 닿는
마음마다 눈물을 흘렸으며
예수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사랑의 불길이 타올랐음을
보고 듣고 알면서도
믿지는 못하는 걸까
 
그는 오늘도
소리 없이 움직이는 순례자
멈추지 않고 걸어다니는
사랑의 집
 
나의 예수를 어떻게 설명할까?
말보다 강한 사랑의 삶을
나는 어떻게 보여주어
예수를 믿게 할까

 
+ 하나님의 편지 / 김소엽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주신
단 한번의 
연서(戀書)
 
연애편지 받고서도
그 뜻도 몰랐던
늦된 아이여
 
사랑은 떠나가고
홀로 있을 때
문득
당신의 생애가
하나님이 보내신
한 장의 편지였음을
 
답신을 보내려니
주소를 몰라
천상 내가
지니고 가야 할
편지
 
뒤늦게
하늘을 보며
남은 여생으로
답신을 쓰고 있네
 
당신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하늘의
편지

 
+ 한 고독한 생애 / 작자 미상
 
여기 한 고독한 생애가 있다
 
그가 나신 곳은 이름 없는 한 두메산골
그의 어머니는 보잘것없는 시골 여인
그의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도
이름 없는 비천한 목수였고
그 후 삼 년 동안 그는 방황하는 전도자였다.
 
그에게는 한 권의 저서도 없으며
그에게는 아무런 지위도 없으며
그에게는 따뜻한 가정도 없으며
그에게는 대학의 학력도 없으며
그에게는 큰 도시의 견문조차 없으며
그의 여행은 기껏 200마일도 못되는 거리였다
 
그에게는 세상의 위대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그가 내어놓을 수 있는 이력서는 단지 한 몸뿐
 
그 자신의 삶은 이토록 비참했던 것
삼 년의 전도와 사랑의 실천 뒤에도
그에게 돌아간 것은
오히려 무리들의 배척이었고
제자들의 배신과 부인이었다
그리고는 원수에게 넘겨져 조롱과 재판을 받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더니라
 
하지만 그 뒤 이천 년이 지난 오늘
그는 인류 역사를 이끌어 온 중심 인물,
 
보라, 이 인류의 역사에서
그토록 호령하던 장군들은 얼마나 많았으며
그토록 영화를 누리던 제왕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이 모든 사람들로도
인류 역사에 남기지 못했던 큰 일을 이룩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의 한 고독한 생애여라
 
 
+ 바람 / 정연복
 
바람은 꽃잎 위에
머물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꽃잎들에게
찰나의 입맞춤을 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히 사라질 뿐
 
바람은 꽃잎에
연연(戀戀)하지 않는다.
 
꽃잎처럼 여리고 착한
영혼들에게
 
모양도 없이 빛도 없이
그저 한줄기 따스함으로 닿았다가
 
총총히 떠나간
그분의 삶이 바람이었듯
 
나의 남은 생애도 바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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