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시 모음> 정연복의 '꽃잎의 생'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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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시 모음> 정연복의 '꽃잎의 생' 외
+ 꽃잎의 생
기쁨에 젖을지언정
기쁨에 눈멀지는 않는다
밝은 빛살의 이면에
살짝 그림자 드리우고 있다.
슬픔에 젖을지라도
슬픔에 무릎 꿇지는 않는다.
눈물 같은 이슬방울들
몇 개만 남기고 훌훌 털어낸다.
기쁨도 슬픔도
적당히 조절할 줄 아는
지혜롭고 멋진 한철
꽃잎의 생이여.
+ 꽃잎 묵상
꽃잎이
실바람에 흔들립니다
참
연약해 보입니다
꽃잎이
말없이 집니다
참
의연해 보입니다.
약하기로는
나는 꽃잎과 똑같습니다
세상살이 작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강하기로도
나는 꽃잎과 똑같을까요
지상에서 떠나는 날
꽃의 모습 닮을 수 있을까요.
요즘 점점 더
꽃의 존재가 커 보입니다.
+ 꽃잎의 힘
얇디얇은 종잇장처럼
여린 것
살짝 만져도 생채기 나고
찢어질 것만 같은
그 약하고 힘없는 것이
배시시 웃는다
햇살 밝은 날에
온몸으로 활짝 웃고
비바람 속에서도
어쩐지 애써 웃는 모습이다.
아픔과 시련의 날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것
어둔 세상 환히 밝히고
슬픈 이들을 위로하는
꽃잎의 힘이다
여리고도 강한 힘이다
+ 꽃잎의 연애
잠자듯 가만히 있던
작은 꽃잎 하나
살랑살랑 흔들린다
가벼이 춤춘다.
바람이 찾아와
꽃잎의 몸을 더듬었을까
사랑이 그립던
꽃잎의 마음을 흔들었을까.
사랑에 흔들리는
제 몸 제 마음
수줍은 듯
몹시 부끄러운 듯
가만가만
사랑의 춤을 추고 있다.
+ 꽃잎
꽃잎에 햇살
한 줌 내리면
그 햇살
꽃잎의 환한 웃음 된다
꽃잎에 이슬
한 방울 내리면
그 이슬
꽃잎의 맑은 눈물 된다.
꽃잎은 작고 여려 보여도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기쁨도
또 슬픔도
제 한 몸에
가만히 담을 줄 안다
생의 희로애락 말없이
삭힐 줄 안다.
+ 꽃잎의 행간(行間)
작은 꽃잎 하나
지는 모습에
이슬같이 맑은
눈물 한 방울
남몰래
흘려보지 못한 사람은
아직 인생살이를
모르는 것.
한철 눈부시게 피었다
쓸쓸히 지는
꽃잎 하나의
그 짧은 행간에
덧없고도
깊고 아름다운
삶과 죽음의
진실이 담겨 있으니.
+ 꽃잎의 말씀
얘야,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지?
그래도 마음을 굳게 먹고
힘차게 즐겁게 살렴.
가냘픈 몸을 가진 나도
한철 웃으며 살다 가는데
나보다 더 강한 몸을 가진 너는
더 잘해낼 수 있을 거야.
슬픔이든 불행이든
안으로 가만히 삭이다보면
환한 기쁨과 웃음의 꽃 한 송이
눈부시게 피어날 거야.
나처럼!
* 정연복(鄭然福) : 1957년 서울 출생. pkom545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