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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월 29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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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시 모음> 정연복의 '풀잎도 운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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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시 모음> 정연복의 '풀잎도 운다' 외

+ 풀잎도 운다

풀잎도 운다
사랑이 그리워 운다

사랑에 가뭄 든 세상이
안타까워 운다.

캄캄한 어둠 속
소리내지 않고

세상 사람들 몰래
밤새워 운다

안으로 안으로만
흐느껴 운다.


+ 풀잎과 나

작은 풀잎 하나
비에 흠뻑 젖었어요

풀잎의 몸 가득
비가 슬픔같이 내려앉았어요

그래도 풀잎은
울지 않아요.

살아가다 보면
슬픈 날도 찾아오겠지요

내 맘 가득
슬픔이 멍울 지겠지요

그래도 나는
울지 않을 거예요.


+ 한겨울 풀

풀이 살아 있네
나 보란 듯이

한파 속에서도 파릇파릇
살아 숨쉬고 있네.

아직은 아스라이 먼
겨울의 끝이지만

꽁꽁 얼어붙은
땅속으로부터

연파랑 봄을
밀어올리고 있네.


+ 단풍나무 아래 풀

불덩이같이 타오르던
진빨강 단풍잎들

한철 생을 마감하고
낙엽 되어 떨어진 곳에

아가 손톱 만한
수많은 풀잎들이 모여

눈부신 초록빛
작은 뜰을 이루었네.

초겨울 한낮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황홀하게 빛나는
초록의 생명들.

꽃보다도 더
어여쁘고 튼튼한

저 앉은뱅이 풀잎들
참으로 장하다.


+ 풀잎과 이슬

풀잎에 이슬 한 방울
내려앉네

몹시 기다렸다는 듯
풀잎이 이슬을 품네

풀잎은 이슬 머금어
외롭지 않네

바싹 말랐던 몸에
생기 돋아나네

이슬은 풀잎 더불어
행복한 집 한 채 얻네

짧은 목숨의
단 한번의 거처를 마련하네.

기껏해야 한나절
너무 짧지만

그래서 더욱 애틋한
풀잎과 이슬

그 둘의 황홀한
동거와 사랑

아,
그리고 영영 이별.


+ 꽃과 풀

꽃의 아름다움은
눈부십니다

꽃이 있어 세상
한구석이 밝아집니다

꽃을 잠시 들여다보면
흐렸던 마음도 환해집니다

꽃은 조용히
좋은 일을 많이 합니다.
    
풀은 꽃보다
눈에 잘 띄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풀의 아름다움도
꽃에 뒤지지 않습니다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파릇파릇한 풀은 참 눈부십니다

풀은 겉모습보다
끈질긴 생명력이 돋보입니다

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삶의 용기와 희망이 샘솟습니다.


+ 꽃과 풀

세상 사람들은 눈에 확 들어오는
예쁜 꽃을 좋아합니다

길가의 풀들에게는
별로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풀의 겉모양은
꽃보다 훨씬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깜빡 잊고 있는 게 있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답던 꽃은
어느 틈에 벌써 지고 없어도

못생기고 투박한 풀은
아직까지도 건재하다는 것.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도
굳세게 자라고 살아가는 풀은

오가는 발길에 채이고 밟히고
거센 비바람과 눈보라와 태풍이 몰아쳐도

온몸이 상처투성이 될지언정  
뿌리째 뽑히지는 않아

잠시 고개 숙였다가는
힘차게 다시 일어선다는 것을.


+ 풀꽃과 외할머니

추석을 며칠 앞두고
외할머니 산소에 다녀왔다

거반 일년만에 가서
한 시간 넘게 벌초했다

무성히 자란 억센 풀들을
커터 칼로 몇 아름이나 잘라냈다.

봉분의 풀을 다듬다
풀꽃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내가 본 중에
가장 작은 꽃

세상에 이리도 작은 꽃이
있을까 싶을 만큼

좁쌀 알갱이 크기의
작디작은 보랏빛 들꽃이었다.

만 여든 셋 연세에
흙으로 돌아가신 그날까지

그야말로 민초(民草)로
고달픈 한평생을 살다 가신

외할머니의 넋이
풀꽃으로 환생했나보다.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pkom54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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