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시 모음> 정연복의 '꽃이 묻는다' 외
도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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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시 모음> 정연복의 '꽃이 묻는다' 외
+ 꽃이 묻는다
나를 좋아한다고
내가 너무너무 예쁘다고
말하고 칭송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수없이 많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내 몸의
아름다움이 2할이라면
보이지 않는 내 영혼의
아름다움은 8할쯤 된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 꽃잎 편지
산다는 게
뭐 별것 있나요
한순간
반짝이는 생이다가
총총 사라지면
그뿐이지요.
나같이 한철이든
길어야 백 년이든
영원의 눈으로 바라보면
똑같이 한 점일 따름
생의 시간을 재는 건
우스운 일.
지상에서
단 하루를 머물다 가도
환한 웃음꽃 한 송이로
피었다 진다면
아쉽고 서러울 것
하나 없지요.
+ 꽃
나무에서 피는
꽃만 꽃인 게 아니다
피고 지는
세상 모든 것은 꽃이다.
하늘의 구름도
땅의 아지랑이와 이슬도
사람도 사람의 목숨도
인생살이도 모두모두 꽃이다.
사랑도 미움도
만남도 이별도
기쁨도 슬픔도
빛과 그림자도 꽃이다.
하늘에 곱게
피었다 지는 무지개도
사람의 눈에 맺혔다
말라 없어지는 눈물도
웃음도 한숨도
저마다 한 송이 꽃이다.
+ 꽃 소리
꽃은 말없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피어나서 질 때까지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
기쁨의 소리를 내지도 않고
슬픔과 고통의 소리도 내지 않는다.
하지만 꽃 앞에서
마음의 귀를 기울이면
뭔가
꽃의 소리가 들린다.
들을 귀 있는 자에게만
가만가만 들려오는
말없는 말
꽃 소리!
+ 꽃 거울
벚꽃이나 진달래
제비꽃이나 민들레처럼
봄철이면 늘 찾아오는
작은 꽃이라도
마음의 옷깃 여미고
가만히 바라보면
꽃이
마치 투명 거울 같다.
'나'라는 존재의
참 작고 보잘것없음
내 맘속에 감추어진
진실과 거짓
내 생의 기쁨과 슬픔
영혼의 쓸쓸한 그늘까지도
한순간 환히
다 드러나는 느낌이다.
고해성사 하듯
정직하고 낮추어진 마음으로
가끔은 그 앞에 서서
내 모습 비추어보아야 할
맑고 좋은 거울
꽃 거울!
+ 꽃의 노래
잠시 슬픔에 젖을지라도
울지 않을래
슬프지 않은 생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한동안 슬플지언정
울지 않을래
나의 슬픔 씻어주는
밝은 태양이 비쳐 오리니
슬픔에 잠깐 잠길지라도
울지 않을래
나의 슬픔 말려주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리니
슬픔이 내 안에 머물다 가도
울지 않을래
+ 웃는 꽃
꽃이
환히 웃고 있는데
저리도 티없이
맑은 웃음을 보내는데
그 웃음
그냥 지나칠 수 없으리
가는 길이 바쁘다고
모른 체할 수는 없으리.
지금은 있지만
머잖아 없어질 저 웃음
삶과 죽음의 틈 사이의
저 예쁜 웃음에 화답하는 것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은
세상에 다시없으리.
+ 꽃은 왜 아름다운가
타고난
자기 모습으로 흡족하다
꾸밈이라곤 없다
성형수술이 뭔지 모른다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피고 지는 걸 개의치 않는다
살고 죽는 걸 근심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욕심 부리지 않는다
마음이 늘 편안하다
언제 어디에서 보아도
밝고 태평스러운 얼굴이다.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pkom545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