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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에 읽는 시 모음> 하청호의 '무릎 학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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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에 읽는 시 모음> 하청호의 '무릎 학교' 외

+ 무릎 학교

내가 처음 다닌 학교는
칠판도 없고
숙제도 없고
벌도 없는
조그만 학교였다.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쳐도
걱정이 없는
늘 포근한 학교였다.

나는
내가 살아가면서
마음 깊이 새겨 두어야 할
귀한 것들을
이 조그만 학교에서 배웠다.

무릎 학교
내가 처음 다닌 학교는
어머니의 무릎
오직 사랑만이 있는
무릎 학교였다.
(하청호·시인, 1943-)


+ 스승
  
작은 마음 일으켜
거친 대양 물보라 일으키며
쏴아 쏴 우뚝 선 보람

너 나 구분 없이
등불 인도하여 주시는
세상의 길라잡이

아, 너무나 위대하신
오직, 사랑으로만 불러볼
살아서는, 언제나 그리울
스승이시옵니다
(정윤목·시인, 충북 보은 출생)


+ 선생님

선생님!
그 한마디가 좋아서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그 한마디가 좋아서
가진 것 다 주어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선생님!
그 한마디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선생님!
그 한마디가 좋아서
평생을
평생을 묻습니다.
(황팔수·아동문학가, 경북 의성 출생)


+ 수업

일요일 저녁
텅 빈 운동장 구석에
한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다

그렇지,
비어 있음이 늘
가장 많은 걸 가르치지
(김진경·교사 시인, 1953-)


+ 똥지게

우리 어머니 나를 가르치며
잘못 가르친 것 한 가지
일꾼에게 궂은 일 시켜 놓고
봐라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나
저렇게 된다
똥지게 진다
(심호택·아동문학가, 1947-2010)


+ 학교에서 배운 것

인생의 일할을
나는 학교에서 배웠지
아마 그랬을 거야
매 맞고 침묵하는 법과
시기와 질투를 키우는 법
그리고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법과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하는 법
그 중에서도 내가 살아가는 데
가장 도움을 준 것은
그런 많은 법들 앞에 내 상상력을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
(유하·영화감독 시인, 1963-)


+ 책꽂이를 치우며  

창 반쯤 가린 책꽂이를 치우니 방안이 환하다
눈앞을 막고 서 있는 지식들을 치우고 나니 마음이 환하다
어둔 길 헤쳐간다고 천만근 등불을 지고 가는 어리석음이여
창 하나 제대로 열어놓아도 하늘 전부 쏟아져 오는 것을
(도종환·시인, 1954-)


+ 공부나 합시다

바깥세상이 시끄러운지라
수학문제를 풀던 선생님이
잠시 분필을 놓으시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려는데
학생 하나 벌떡 일어나 소리지른다
- 선생님 공부나 합시다

때는 맑고 푸른 가을인지라
영어문제를 풀던 선생님이
잠시 분필을 놓으시고
우리 말 고운 시 하나 읊으려 하자
학생 하나 벌떡 일어나 소리지른다
- 선생님 공부나 합시다

이런 학생 나중에 무엇이 될까
세상 모르고 공부만 하여
남보다 수학 문제 하나 더 빨리 풀어
일등 하여 일류대학 들어간들
무엇이 될까 이런 학생 나중에
시집 한 권 아니 읽고 공부만 하여
남보다 영어 단어 하나 더 많이 외어
우등으로 일류대학 들어간들

그런 학생 졸업하고 세상에 나오면
시끄러운 세상에 나와 높은 자리에 앉게 되면
말끝마다 입으로 학생은 공부나 하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데모나 하는 학생들을
참교육 운운하는 선생님을
잡아조지고
때려조지고
가둬조지는
그런 사람이 될지도 모르고
(김남주·시인, 1946-1994)


+ 잊을 수 없는 촌지

일찍이 부모님 두 분 다 잃고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라난 우리 반 이경혜
저만큼 밝고 착하게 키우기 얼마나 힘드셨을까
꼬부라진 허리 몇 번이나 곧추 펴시며
스승의 날, 학교에 찾아오신
일흔 살의 호호백발 할머니
"철모르는 어린것들 가르치시느라
얼마나 힘들 것이요, 선상님"
가실 때 허리춤에서 꺼내 주신
꼬깃꼬깃 접혀진
할머님 체온 따뜻했던 천 원짜리 한 장
안 받겠다고 몇 번 사양했다가
되레 흠씬 야단맞고 도로 받은 짜장면 값
꼭꼭 간직했다가 할머님 말씀대로
경혜랑 맛난 짜장면 사 먹었네
내가 받은 가장 작은 촌지
그러나 가장 잊을 수 없는 큰 촌지
(양정자·시인, 1944-)


+ 나무의 말씀

서두르지 말라
남들과 비교하지 말라

그냥 네 생의 속도로
차분차분 나아가라.

깊이 뿌리를 내려라
삶의 기초를 튼튼히 해라

촐랑촐랑 나대지 말고
한곳에 진득이 머물러라.

입 함부로 놀리지 말라
가만히 귀기울이는 법을 배워라

"웅변은 은, 침묵은 금"이라는
옛 속담을 기억하라.  

따스한 햇살이라고
과식하지 말라

모진 비바람이라고
무서워 피하려 하지 말라.

눈에 띄는 생의 진전이 없다고
조급한 마음먹지 말라

철 따라 세월 따라
차근차근 조금씩만 커가라.

꽃 피고 열매 맺는
기쁘고 좋은 날

나비와 새들이
너를 찾아올 날이 있을 거다.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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