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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01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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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시 모음> 홍수희의 '11월의 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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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시 모음> 홍수희의 '11월의 시' 외

+ 11월의 시          

텅텅 비워
윙윙 우리라

다시는
빈 하늘만

가슴에
채워 넣으리
(홍수희·시인)


+ 11월이 지는 날  

눈부시게 저무는 저 노을빛은
땀내며 타들던 산골 그 아궁이 장작불빛 같다

아이의 사타구니가 노릇노릇 익고
불 내를 품은 얼굴엔 졸음이 잔뜩 달라붙을 때쯤
밥 냄새를 뿜던 장작불 삭은 재 속에서 터지던
알밤의 요란한 웃음
아버지의 등에 업혀온 장작도
호주머니에 담겨온 알밤도
그 저녁 담 넘어 퍼지던 촌락의 냄새도
노을을 등지고
그 돌아서서 웃으시던 아버지의 환한 빛인 듯
11월의 노을빛은 아직 저리 눈부시다.

결실을 내어주고 뿌리 밑 샘까지 말려버린 고목
그 저녁 빛 속에 학 다리로 환히 서 있다
(이영균·시인, 1954-)


+ 11월의 노래

해 넘어가면 당신이 더 그리워집니다
잎을 떨구며 피를 말리며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이 그리워 마을 앞에 나와
산그늘 내린 동구길 하염없이 바라보다
산그늘도 가버린 강물을 건넙니다

내 키를 넘는 마른 풀밭들을 헤치고
강을 건너 강가에 앉아
헌옷에 붙은 풀씨들을 떼어내며
당신 그리워 눈물납니다

못 견디겠어요
아무도 닿지 못할 세상의 외로움이
마른 풀잎 끝처럼 뼈에 스칩니다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에게 가 닿고 싶은
내 마음은 저문 강물처럼 바삐 흐르지만
나는 물 가버린 물소리처럼 허망하게
빈 산에 남아 억새꽃만 허옇게 흔듭니다

해 지고 가을은 가고 당신도 가지만
서리 녹던 내 마음의 당신 자리는
식지 않고 김납니다.
(김용택·시인, 1948-)
    

+ 11월의 편지

지구가 뜨거워졌는지
내가 뜨거워졌는지
아직 단풍이 곱다

갈색 플라타너스 너른 잎새에
네 모습이 서있고

11월이 되고서도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
꼬깃꼬깃 접힌 채
쓸려간다

모니터에 네 전령처럼
개미 한 마리
속없이 배회하는 밤이 깊다

네가 그립다고
말하기보다 이렇게 밤을 밝힌다
11월 그 어느 날에
(목필균·시인)


+ 11월 - 마지막 기도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두고 갈 것도 없고
가져갈 것도 없는
가벼운 충만함이여

헛되고 헛된 욕심이
나를 다시 휘감기 전
어서 떠날 준비를 해야지

땅 밑으로 흐르는
한 방울의 물이기보다
하늘에 숨어사는
한 송이의 흰 구름이고 싶은
마지막 소망도 접어두리

숨이 멎어가는
마지막 고통 속에서도
눈을 감으면
희미한 빛 속에 길이 열리고
등불을 든 나의 사랑은
흰옷을 입고 마중 나오리라

어떻게 웃을까
고통 속에도 설레이는
나의 마지막 기도를
그이는 들으실까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11월

바싹 마른 입술로
나뭇잎 하나 애절하게
자작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
곧 어디론가 떠날 듯한
몸짓으로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고개를 내젓고 있다
양재동에서 안양으로 가는 913번 좌석버스
차장 밖으로 이별을 기다리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해마다 잎을 갈아치우는
나뭇가지의 완강한 팔뚝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매달린 잎들이 모조리 소스라쳐 있다
더 이상 내줄 것 없는 막막함으로
온몸 바스라질 것 같은 눈빛으로
속이 다 삭아버린
사랑에 매달리고 있다

입을 앙다문
여윈 나뭇잎 같은 계집 하나,
바싹 마른 입술로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송정란·시인)


+ 11월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
얼음이 가득하다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
움츠린 어깨마다 수북한 근심
어둠은 더 빨리 얼굴을 들이민다

종종걸음으로 시간을 뒤쫓아도
늘 손은 비어있다        

비어 있어도 아름다운 나무들
제자리 묵묵하게 삶을 다진다
비늘 떨군 담담함으로 12월을 기다린다

마지막이란 이름 붙은 것의 앞은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거름이라서
마음이 조금 흔들리는 것

낙엽을 떨구는 몸짓을 사람들도 한다
잠시 어깨 움츠렸다가
눈이 오면 곧 환하게 웃는다
(노연화·시인)


+ 11월의 마지막 날

오늘은 11월의 마지막 날
첫눈이 내리다가 비로 바뀌고
다시 비가 눈으로 바뀌곤 한다.
가을과 겨울이 시간의 영역을 다툰다.

단풍나무는 화려한 가을 송별회를 하고
눈바람은 낙엽을 휩쓸며 겨울의 환영회를 벌인다.
가을과 겨울이 줄다리기를 하지만
위풍당당한 겨울에 가냘픈 가을은 당할 수 없다.
젊은이들도 첫눈을 반기며 만남을 약속한다.
가을은 울며 남으로 떠난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내년에 오리라.
계절의 쳇바퀴는 누가 돌리나?
추동춘하 추동춘하 추동춘하...
계절의 쳇바퀴를 돌리면서 세월은 간다.
세월이 가면 사람도 가고 만물도 흐른다.
(진장춘·시인)


+ 11월의 허수아비

오소서, 오소서
상처뿐인 이 계절에 오소서

기다리다 흘리는 눈물이
차갑게, 차갑게 얼어붙어
날카로운 고드름 되어
그대 가슴 찌르기 전에

그리움에 지친 영혼
구름처럼 붉은 노을 되어
어딘지 모를 곳에 부서져
흔적 없이 사라지기 전에

넘치는 사랑으로
누렇게, 누렇게 삭아 내리는
저 들녘의 얼빠진 바람둥이들
돌아보지 말고 빨리 달려와

모닥불 같은 사랑으로
굳어진 혈관을 달구어
녹슬어 멈춰 버린 심장에
뜨거운 피를 부어 주오

그대여, 그대여,
꿈속에서 서성이는
신기루 같은 그대여
(김태인·시인, 1962-)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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