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시 모음> 한하운의 '생명의 노래' 외
도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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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시 모음> 한하운의 '생명의 노래' 외
+ 생명의 노래
지나간 것도 아름답다
이제 문둥이 삶도 아름답다
또 오히려 문드러짐도 아름답다
모두가
꽃같이 아름답고
...... 꽃같이 서러워라
한세상
한세월
살고 살면서
난 보람
아라리
꿈이라 하오리
(한하운·문둥병자 시인, 1919-1975)
+ 존재의 빛
새벽별을
지켜본다
사람들아
서로 기댈 어깨가 그립구나
적막한 이 시간
깨끗한 돌계단 틈에
어쩌다 작은 풀꽃
놀라움이듯
하나의 목숨
존재의 빛
모든 생의 몸짓이
소중하구나
(김후란·시인, 1934-)
+ 그냥 둔다
마당의 잡초도
그냥 둔다.
잡초 위에 누운 벌레도
그냥 둔다.
벌레 위에 겹으로 누운
산 능선도 그냥 둔다.
거기 잠시 머물러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
내 눈길도 그냥 둔다.
(이성선·시인, 1941-2001)
+ 생명
바닷가에서 작은 조가비로
바닷물을 뜨는 아이처럼
나는 작은 심장에 매일
하늘을 퍼 뜬다
바다 아이가 조가비에
바다의 깊은 물을
다 담을 수 없는 것처럼
나의 허파도 하늘을 다 담지 못한다
그러나 조개껍질에 담긴 한 방울 물이
실은 바다 전체이듯
가슴속에 담긴 하늘 또한
우주 전체이다
(이성선·시인, 1941-2001)
+ 생명의 아픔
사랑은
가장 순수하고
밀도 짙은 연민이에요
연민
불쌍한 것에 대한 연민
허덕이고 못 먹는 것에 대한 설명 없는
아픔
그것에 대해서
아파하는 마음이
가장 숭고한
사랑입니다.
사랑이
우리에게 있다면
길러주는
사랑을 하세요.
(박경리·소설가, 1926-2008)
+ 생명(生命)
생명은 하늘에서 온다.
하늘이 따뜻한 봄바람으로
세상에 사랑의 기운 불어넣으면
나무에서 꽃이 피고 알에서 새들 깨어나듯
엄마 아빠를 닮은 귀여운 아가들이 태어난다.
생명은 순결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들과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노루새끼들
물 속을 헤엄쳐 다니는 작은 물고기들도
잠들어 있는 아가의 얼굴처럼
죄 있는 것 하나도 없다.
생명은 자란다.
나무는 굵어지고 숲은 넓어져
가지마다 새들 깃들여 온갖 소리로 노래하고
아가들은 예쁘고 슬기롭게 자라나
과학자가 되고 음악가가 되고 시인이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한승수·시인)
+ 생명
꽃이 아름다운 것은
생명이 있기 때문
눈부시게 피었다가
쓸쓸히 지기 때문이다.
삶이 아름다운 것은
시작과 끝이 있기 때문
지상을 거닐다가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생명이 아름다운 것은
다채롭기 때문
기쁨과 슬픔이
늘 함께 있기 때문이다.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