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시 모음> 원구식의 '별' 외
도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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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 모음> 원구식의 '별' 외
+ 별
모든 것 가운데 이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이것은 최소한 필요할 때
켜지고 꺼지는 불이 아니다. 삶이 우리에게 즉각적인 대답을 요구할 때,
하늘에서 빛나는 별, 상징처럼.
(원구식·시인, 1955-)
+ 별이 되리라
내가
별이 되고 싶은 까닭은
출렁이는 물결
네 가슴 호수에
끝도 없이
잠기고 싶은
소망 때문이다.
(황금찬·시인, 1918-)
+ 별
당신 그리는
내 눈빛은 하늘로 가
별이 됩니다
내 그리는
당신 마음도 하늘로 가
별이 되겠지요
우리 창을 열고
밤하늘의 별을 보아요
초롱초롱한
그리움을 보아요
내가 당신을 보듯
당신이 나를 보듯
(김상연·시인, 1963-)
+ 별
별을 따리라 맑은 밤 한라산에 혼자 올랐네
별이여 미안하다 아무래도 나는 너를 따야겠다
많이 따 버리면 하늘이 너무 어두울지 몰라
이름도 없이 외로운 별 네 송이만 떼어냈네
앙증맞게 작은 별 하나는 아내에게 주리라
반짝반짝 빛나는 별 두 개는 아이들 나눠주고
떠다니던 초라한 별 하나는 내 품에 안으리라
길게 드리워진 은하수 타고 훌쩍 내려와 보니
웬 일인가 주머니 속 별들이 순식간 없어졌네
별은 죽으면 이렇게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인가
얘들아 저기 저기서 따 왔는데 라고 말하려는데
별들은 있던 자리로 돌아가 빛을 내고 있었어라
아 별아 정말 미안하다 너의 행복을 따려 했다니
얘들아, 별은 멀리서 보기만 해야 하는 것이구나
(양전형·시인, 1953-)
+ 별을 팝니다
저리 쉽게 별을 구워낼 수 있다니
세상, 연고라고는 엉덩이 붙여놓은 자리뿐인 여자가
오글오글 모여 있는 햇살 끌어안고
온 종일 별을 찍어내고 있다
설탕 한 스푼, 소다 찔끔 섞어 잘 저으면
양은 국자 안에서 흠실흠실 몸을 바꾸는 여자의 꿈
동네 아이들을 불러모은다
코딱지만한 손에 별 하나씩 쥐고
쪼그리고 앉아 꿈을 빚는 꼬마 녀석들
바늘 끝에 침을 살살 발라 계곡을 따라가면
알퐁스 도데의 별 하늘이 열리고
은하철도999가 열리고
붓끝에 매달린 고향 별 하늘이 열린다
바이올린 현처럼 쏟아지는 미리내 다리 건너
살풋 다가앉아 별을 다듬는 사이
어느새 초롱초롱 빛나는 개밥바라기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어둠 결을 저으며 고개를 들어보니
여자는 어느새 자리를 옮겨
하늘정원에 별자리를 굽고 있다
(이성임·시인, 전남 장성 출생)
+ 오늘밤 저렇게 별이 빛나는 이유
우리가 바라보지 않으면
별은 빛나지 않는다네
오늘밤 저렇게 별이 빛나는 이유는
사랑이여,
내가 오래오래 그대를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라네
그대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그리움의 거리만큼 아득한 곳에서
오늘밤 저렇게 별이 빛나는 이유는
그대가 초롱초롱 눈뜨고 있는 동안
나 그대의 말없는 배경이 되고 싶다는 뜻이라네
그 언제부터였던가
별이 빛나던 밤에
나는 낡은 참고서를 뒤적이던 까까머리였고
그대는 밤 새워 긴 편지를 쓰던 단발머리였지
나는 그대로 하여 잠들지 못하고
그대는 나로 하여 잠들지 못하던
사랑이여,
오늘밤 저렇게 별이 빛나는 이유는
그대와 내가 어느새
이 세상을 끌고 가는 주인이 되었다는 뜻이라네
사랑이여,
별이 어디 하늘에서만 빛나던가
하염없이 흘러가는 강물 위에도
달리는 자동차의 안테나 끝에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장의 기계 소리 옆에도
우리가 바라보는 만큼
별은 빛나는 것
걸어온 길보다
더 많은 길을 걸어가야 할
그대와 나 가슴 깊은 곳에도
오늘밤 저렇게 별이 빛나는 이유는
(안도현·시인, 1961-)
+ 별에게 가는 길
저 하늘
높고 높은 곳
내 작은 머리로는
가늠조차 할 수도 없는
까마득히 먼 곳에서
살고 있는
별에게 가는 길이 없을까
별의 품에 안길 수는 없을까.
갈 수 있다
너끈히 갈 수 있다
눈을 뜨나 눈을 감으나
밤낮으로 별을 사모하기만 하면
눈 깜빡할 새
별에게 가 닿을 수 있다
저 하늘 끝
별의 품속에 들 수 있다.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