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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에 관한 시 모음> 이재무의 '혁명'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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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에 관한 시 모음> 이재무의 '혁명' 외

+ 혁명

무릇 혁명을 꿈꾸는 자
꽃나무를 닮아야겠다
가지가 꺾이고 줄기가 베여도
뿌리 남아 있는 한 악착같이 잎 틔우고
꽃 피워 마침내 열매 맺어야겠다
저마다의 외로움을 나이테로 새기면
지평을 푸르게 물들이다가
꽃들을 다 내려놓고 쓰러져야겠다
이웃한 나무들의 거름으로.
(이재무·시인, 1958-)


+ 기도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는 마음으로
우리가 찾는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루자
(김수영·시인, 1921-1968)


+ 봄의 혁명

봄은 보는 계절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는 계절
마음의 눈을 뜨고 미리 보는 계절

춘설(春雪)이 날리는 3월 아침
사락사락 언 대지를 돌아보니
지금 안에는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땅속 씨알들 속에서
언 가지 끝 꽃망울 속에서
매달린 고치 속 흰 날개 속에서

어둠 속에서 침묵 속에서
이 문명의 막다른 예감 속에서
거리 투쟁이 아닌 내면 투쟁 속에서

지금 막 피어나는 저 붉고 푸른 불꽃들
생생히 도약하는 저 동그란 숨결들
보이지 않는 봄의 저 고요한 힘의 혁명
(박노해·시인, 1957-)


+ 혁명의 길

시대의 절정에서
대지의 사상에 뿌리를 내리고
새벽을 여는 사람이 있다 어둠의 벽을 밀어
혁명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다
굶주림이 낯익은 그의 형제이고
몸에 밴 북풍한설이 그의 이불이다
그리고 얼굴 없는 그림자가 그의 길동무고

혁명의 길은
다정히 둘이 손잡고 걷는 길이 아니다
박수갈채로 요란한 도시의 잡담도 아니다
가시로 사납고 바위로 험한 벼랑의 길이 그 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도피와 투옥의 길이고
죽음으로써만이 끝장이 나는 긴긴 싸움이 혁명의 길이다
그러나 사내라면 그것은 한번쯤 가볼 만한 길이다
전답이며 가솔이며 애인이며 자질구레한 가재도구며......
거추장스러운 것 가볍게 털어버리고
한번쯤 꼭 가야 할 길이다
과연 그가 사내라면
하늘의 태양 아래서
이름 빛내며 살기란 쉬운 일이다
어려운 것은
지하로 흐르는 물이 되는 것이다 소리도 없이
밤으로 떠도는 별이 되는 것이다 이름도 없이
(김남주·시인, 1946-1994)


+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시인, 1930-1969)


+ 동참  

의지와 신념만 있으면 행운은
무조건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믿는
젊은 지도자 카스트로가
자신의 혁명 대열에 합류하자고 했다.
그는
무장투쟁으로 자신의 조국을
해방시키겠다고 했다.
나는
물론 동참하겠다고 했다.
나에게도 행운이 따라올지 모르겠다.
이제 그곳에서 나는
방랑하는 기사의 망토를 벗어버리고
전사의 무기를 받아들임으로써
빗발치는 총알 속을 누벼야 하리라.
(체 게바라·아르헨티나 출생 혁명가, 1928-1967)


+ 행복한 혁명가

쿠바를 떠날 때,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씨를 뿌리고도
열매를 따먹을 줄 모르는
바보 같은 혁명가라고.

나는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 열매는 이미 내 것이 아닐뿐더러
난 아직 씨를 뿌려야 할 곳이 많다고.
그래서 나는 행복한 혁명가라고.
(체 게바라·아르헨티나 출생 혁명가, 1928-1967)


+ 제대로 된 혁명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는 혁명에 가담하지 마라
그저 원수들의 눈에 침이라도 한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을 좇는 혁명은 하지 말고
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절단이어야 한다
사과 실린 수레를 뒤집고 사과가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는가를 보는 짓이란 얼마나 가소로운가?

노동자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마라
우리 모두가 자력으로 괜찮은 귀족이 되는 그런 혁명을 하라
즐겁게 도망치는 당나귀들처럼 뒷발질이나 한번 하라

어쨌든 세계 노동자를 위한 혁명은 하지 마라
노동은 이제껏 우리가 너무 많이 해온 것이 아닌가?
우리 노동을 폐지하자, 우리 일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
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D.H. 로렌스·영국 시인이며 소설가, 1885-1930)


+ 나무  

아무 일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 같은데

시간의 흐름 따라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낸다

꽃을 떠나보내고
그 자리에 열매를 맺는다.

목소리 높여
혁명을 부르짖는 이들은

나무에게서
혁명가의 참모습 읽어야 하리.

보이지 않는 뿌리와
내면의 일에 대한 성실함으로

비바람 눈보라
혹독한 추위도 다 견디고

기어코 초록빛
생명의 봄을 가져오는

세상의 모든 나무들의  
불굴의 혁명 의지를 배워야 하리.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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