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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의 애송시 모음> 전영관의 '별이 나에게'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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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의 애송시 모음> 전영관의 '별이 나에게' 외

+ 별이 나에게

작은 섬
하나 있기에
파도는 흰 물결을 만들고

작은 꽃
하나 있기에
나비는 아픈 날개를 쉬고

네가
거기 있기에
나 오래오래 반짝이리.
(전영관·시인, 1950-)


+ 채송화 꽃씨

채송화 꽃씨를 딴다.

지구에는 아직도
이렇게 작은 꽃씨가 있어
여름 내내 예쁜 꽃을 피우는데

햇살 고운 이 가을
조심조심 네 작은
꽃씨를 딴다.

작아서 미운 것이
어디 있으랴.

채송화네 작은 꽃씨를 딸 때면
세상 사는 일이
참 조심스럽다.
(공재동·시인, 1949-)


+ 벌레 먹은 나뭇잎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이생진·시인, 1929-)


+ 빛

쓰러질 것은 쓰러져야 한다  
무너질 것은 무너지고 뽑힐 것은 뽑혀야 한다
그리하여 빈 들판을 어둠만이 덮을 때
몇 날이고 몇 밤이고 죽음만이 머무를 때
비로소 보게 되리라 들판 끝을 붉게 물들이는 빛을  
절망의 끝에서 불끈 솟는 높고 큰 힘을
(신경림·시인, 1936-)


+ 구석

나는 구석이 좋다
햇살이 때때로 들지 않아
자주 그늘지는 곳
그래서 겨울에 내린 눈이
쉽게 녹지 않은 곳
가을에는 떨어진 나뭇잎들이
구르다가 찾아드는 곳
구겨진 휴지들이 모여드는 곳
어쩌면 그 자리는
하느님이 만드신 것인지도 모르지
그곳이 없으면
나뭇잎들의 굴러다님이
언제 멈출 수 있을까
휴지들의 구겨진 꿈을 누가 거두어 주나
우리들 사랑도 마음 한 구석에서
싹 트는 것이니까
(이창건·시인, 1951-)


+ 행복

행복은 행복하리라 믿는 일
정성스런 손길이 닿는 곳마다
백 개의 태양이 숨쉰다 믿는 일.

그리운 사람들을 부르며
소처럼 우직하게 일하다 보면
모든 강 모든 길이 만나 출렁이고
산은 산마다 나뭇가지 쑥쑥 뻗어 가지.
집은 집마다
사람 냄새 가득한 음악이 타오르고
폐허는 폐허마다 뛰노는 아이들로 되살아나지.

흰 꽃이 펄펄 날리듯
아름다운 날을 꿈꾸면
읽던 책은 책마다 푸른 구름을 쏟아 내고
물고기는 물고기마다 맑은 강을 끌고 오지.

내가 꿈꾸던
행복은 행복하리라 믿고
백 개의 연꽃을 심는 일
백 개의 태양을 피워 내는 일
(신현림·시인, 1961-)


+ 소금 같은 이야기 몇 줌

이왕이면 소금 같은 이야기 몇 줌
가슴에 묻어 두게나
당장에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이겠지만
지나고 나면
그것도 다 추억이 된다네

우리네 삶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이
즐거웠던 일보다는 쓰리고 아팠던 시간이
오히려 깊이 뿌리를 내리는 법

슬픔도 모으면 힘이 된다
울음도 삭이면 희망이 된다

정말이지 소금 같은 이야기 몇 줌
가슴에 묻고 살게나

세월이 지나고
인생이
허무해지면
그것도 다 노리개감이 된다네
(윤수천·시인, 1942-)


+ 가난한 날의 행복

신혼 초
첫 아이를 임신한 아내가

어느 날
삼계탕을 먹고 싶다고 했다.

청량리에 있는 '장수원'을 찾아가
삼계탕 한 그릇을 주문했다

내 주머니를 몽땅 털었지만
한 그릇밖에 시킬 수 없었으니까.

사실 나도 그때
조금은 시장기를 느꼈지만

'난 배 안 고파'라고 거짓말하고
아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구경했다.

침이 꼴깍 넘어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냥 행복했다

삼계탕 한 그릇에 행복해하는
아내의 소박한 마음이 예뻐 보였다.

그리고 몇 달 뒤
아내는 첫아들을 순산했다

체중 3.8킬로그램의
아주 건강한 아가를 낳았다.

벌써 스물 다섯 해가 지나간
아스라한 옛일이지만

지금도 이따금 추억하는
가난한 날의 행복이었다.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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